[웹진 '날것'] 2018-5호. 먼저 터져나온 외침이 외롭지 않도록 - 달밤 나의 하나님. 연약한 이들과 함께 우시는 주여. 지금 우리 가슴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하사 서로 도우며 어울려 살도록 세상을 지으셨지만 우리는 힘을 모으고, 빼앗고, 구분하고 차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안에서 여성들, 그리고 성소수자들은 날 때부터 죄인이 되어 스스로를 미워하며 살았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어떠했는지요. 수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따랐을 것이나, 역사 속에는 오직 남성들만이 기록되어 사도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예수의 복음을 듣고 가장 가슴이 아팠을 이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에 설움이 복받쳤을 이들, 하나님을 저 멀리 계신 두려..
[웹진 '날것'] 2018-4호. 다시 찾고싶은 명절 - 소네치카 “저 올 해 스무살이에요.” 열아홉에서 스무살이 되던 송구영신예배에서 마주치는 낯익은 얼굴들에게 ‘안녕하세요’ 대신 그렇게 인사했다. 주일학교를 제외하고는 그 교회에 가장 어린 사람이 줄곧 나였다. 중고등부 담당 전도사님은 나를 가리키며 핏덩이 잘 챙기라고 언니들에게 말하곤 했다. 교회에서 나는 미워도 사랑받는 막내딸 소네치카였다. 추석이나 설날은 외로웠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이 반갑기는 했지만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라는걸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울증이 심했던 몇 년 간은 누가 오던 얼굴만 슬쩍 비추고 내 방에 틀어박혀있었다. 나 아주 어릴 적 이후로 내 집에는 제사도 없었으며 큰 집으로 가는 일도 없었다. 오랜만에 본..
[웹진 날 것] 2018-특별호. 성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 유민믿는페미의 이번 사연 주제가 “혼전순결과 섹스”라고 하니 꼭 사연을 적어 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이 주제로 사연을 쓰기 전에 읽어보고 싶은 책도 있어서 서점에 왔지만 내가 찾는 ‘낙태’관련 책은 다 재고가 없다. 지역 여성민우회에 전화해봤더니 라는 책을 대여해주실 수 있다고 한다. 민우회에 가서 읽어봐야겠다. 어떤 얘기부터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은 내 경험을 먼저 써보려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에게 사귀자고 했던 고등학교 1학년의 축구부 오빠는 자기 집으로 나를 불렀고, 어두운 방에서 키스를 했다. 키스 경험은 있었기에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는 손으로 내 가슴을 만지고 바지와 속옷 안으..
[웹진 날 것] 2018-3. 고부갈등은 없다. - 폴짝 할머니는 절에 다니신다. 불교신자가 아닌 나는 잘 모르지만 불심도 깊으신지 절에 가야 한다며 오래 기다려 잡은 병원 예약을 미루시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면 꼭 유명하다는 절에 들러 공불을 드리신다. 그리고 그런 때면 늘 자신의 기도제목을 읊어주신다. 손녀딸 대학원에 붙으라고 열심히 기도했더니 부처님이 떡! 붙을 것이라고 했다는 할머니의 말과는 다르게 내가 대학원에 줄줄이 떨어진 것을 보면 기도빨이 영 약하신 듯 하지만 모든 기도가 그렇듯 결과보다는 정성과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할머니의 소망과 염원을 담은 기도는 늘 자식들을, 손주들을 향해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기도에 등장하지 않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할..
웹진 ‘날 것’ 2018-2호. 함부로 평가받아도 되는 무례한 명절을 보내며, 그리고 떠나보내며. -희년 곧 명절이다. 그다지 반갑지 않은 명절. 대체 언제부터 명절은 나에게 불편한 날이 되었을까? 분명히 어릴 적에는 기쁘고 즐겁다 못해 기대되고 설레는 날이었는데 말이다. 명절 때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의 윷놀이, 지글지글 맛있는 전과 튀김들(이 음식들은 대체 다 누가 만들었을까?), 안부 인사를 드리면 받게 되는 쏠쏠한 용돈들. 이런 요소들이 나로 하여금 명절을 더 기대하게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이후, 나에게는 명절이 되기 몇 일전에 늘 하는 의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이어트’이다. 명절이 다가오기 전에 인터넷 기사에 순위권에 드는 내용은 “명절에 듣기 싫은 말”..
[웹진 ‘날 것’] 2018-1호. 익숙하지 않은 기대 - 오스칼네고양이 어느 순간 난 두려워졌다. ‘믿는페미’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글을 쓰고 인터뷰를 했다. 나의 생각에 적잖은 공감과 응원 그리고 기대가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때를 만난 듯 쏟아지는 여성주의 관련 책과 콘텐츠들 사이에서 나는 무슨 이야기를 보태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비슷한 이야기를 보고 반복하며 쌓이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함께하는 동지들은 힘을 내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운동을 해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자꾸만 뒤로 숨고 싶어졌다. 2018년 1월, 해가 바뀌고 마음을 새롭게 다잡고자 개신교 계열의 한 수도원으로 향했다. 외부와 단절되어 아무 소식도 듣지 않고..
창세기 22장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들인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 잔인한 ‘운명’을 받아들인다.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내리치는 순간, 하나님은 황급히 천사를 보내 이삭을 살린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셀 수 없이 접했을 이 익숙한 이야기에 낯선 질문 하나가 튀어나왔다. “아브라함은 사라와 그 문제를 두고 상의를 했을까요?”그러게 말이다.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사실은 ‘죽이는’) 그 엄청난 계획을 사라도 알고 있었을까? 사라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성경은 왜 사라의 이야기를 쏙 빼놨으며 우리는 왜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설교하던 목사님이 불쑥 던진 질문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는 정신을 반짝 차리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질문이 꼬..
시작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은 무엇일까?나에게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까끌하게 목에 걸려 쉽게 삼켜지지 않기도하고때로는 저 아래 깊은 곳에서 부글부들 올라와 입술 언저리를 멤돌기도한다.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라는 정체성은 나날이 깊게 새겨지고있음은 분명하다. 나는 언제 페미니스트가 되었던걸까? 교회동생이 sns에 교회내 성차별과 여성혐오의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모두가 묵묵부답이었을 때? 선교단체 시절 할말은 해야하고 앞에나서는걸 좋아해서 '참자매'의 범주에 들지못함을 깨달았을 때? 아니면 '엄마는 왜 우리 집 거실에서도 다리를 모으고 앉으라고하는거지?'라는 질문이 생겼을 때? 그도 아니라면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었을때?나는 그 때부터 페미니스트가 될 운명이었던걸까? '언제부터지'를 생각..
어렸을 때 기억나는 몇 장면들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나에게 입히려고 했던 쫄바지가 너무 싫어서 울면서 땡깡을 부렸다. 덕분에 답답했던 그 쫄바지를 입지 않아도 됬다. 추석날 한복을 입고는 자전거를 타다가 치마가 다 찢어버렸다. 할아버지에게는 오빠한테만 잘해주냐고 화를 냈다. 그렇게 나는 그렇게 성질 더러운 애였다. 그러다가 모태신앙으로 교회 안에 있었던 나는 차츰 '죄'에 대해 배워갔다. 중학교 수련회 때 내가 지었던 '죄'를 떠올리며 써보도록 했고 이를 용서해주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도록 했다. 나는 '죄'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강사 목사님이 말하기를 자신이 아직 죄인임이 깨달아지지 않는 사람은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였고 나는 나의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했다. 그 때 ..
페미니즘은 내 안에 있어왔고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스며들듯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내가 먼저 관심가지게 된 건 성소수자 인권운동이다. 기독교가 성소수자를 배척한다는 것을 중학생 때 알게 되었고 그것은 나의 죄책감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나에게 그건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왔다. 난 이걸 신학적으로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지, 어떻게 내 주위 호모포피아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몰랐다. 성인이 되어서 책을 통해 다른 신학적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내가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한다는 말을 교회에서, 내 공동체에서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20살 때 대학교 교양수업으로 여성학 수업을 들었다. 즐거운 수업이었다. 기본적인 개념을 알게되었고 교수님이 말하는 대부분의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 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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