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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것'] 2018-5호.
먼저 터져나온 외침이 외롭지 않도록
- 달밤



나의 하나님. 연약한 이들과 함께 우시는 주여. 지금 우리 가슴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하사 서로 도우며 어울려 살도록 세상을 지으셨지만 우리는 힘을 모으고, 빼앗고, 구분하고 차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안에서 여성들, 그리고 성소수자들은 날 때부터 죄인이 되어 스스로를 미워하며 살았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어떠했는지요. 수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따랐을 것이나, 역사 속에는 오직 남성들만이 기록되어 사도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예수의 복음을 듣고 가장 가슴이 아팠을 이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에 설움이 복받쳤을 이들, 하나님을 저 멀리 계신 두려운 신이 아니라 내 아버지, 어머니로 부를 수 있음에 감격했을 이들이 과연 누구였을까요.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날, 가장 큰 은혜를 경험할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영영 지워지고 가려져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예수의 여성 제자들, 성소수자 제자들을 기억합니다. 예수의 발에 옥합을 깨트리고 머리결로 닦았던 눈물의 마리아, 그 심정을 생각합니다.

주님. 지금 이 땅에는 권력자로부터 성적인 괴롭힘과 착취를 당한 이들의 울부짖음이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은 이제서야 놀라는 척 하며 유난을 떨고 있지만, 영겁의 시간을 고통 속에 참아왔던, 피해를 당하고도 자기 자신을 탓해왔던 억울한 이들의 외침이 이제야 조금 아주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곳곳에, 너무나 많은 아픔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은 주의 종이라 믿고 그의 가르침을 신뢰하고 따랐던 목회자가 성폭력을 저지른 후에는 도리어 나를 꽃뱀으로 몰고 갈 때, 목사이자 지도교수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망설임 끝에 고발하자 “아름다운 사랑이 추악한 법정 공방으로 변질되어 슬프다”는 파렴치한 증언을 들어야 할 때,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더렵혀진 존재라며 나를 따돌리는 교회 공동체를 경험할 때. 하나님 우리는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습니다. 나를 갉아먹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먼저 터져나온 외침이 외롭지 않도록, 우리는 이제 더 소리내어 외치고 우리가 여기 이렇게 살아있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람이고, 누구나 타인을 대할 때 그러하듯 삼가 조심하고 존중하며 상대에게 스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성폭력은 서로의 권력이 다를 때 두려움 없이 행해지는 범죄입니다. 믿음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다면, 상대에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느낄 줄 알았다면 그 뻔뻔한 성폭력을 과연 행할 수 있었을까요. 자신 안에서 썪어가는 하나님의 음성에 잠깐이라도 귀를 열었다면, 상대의 존엄이 무너질 때 하나님이 함께 분노하게 된다는 걸 기억했다면 어떻게 타인을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아직 두려움에 쌓여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 그리고 세상의 강력한 올무를 한 번에 끊어낼 수 없는 우리의 연약함이 지금의 걸음을 무겁게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더 많은 눈물이 필요할지라도 주님, 주님이 우리의 편이시고 하나님 나라는 마침내 도래한다는 것을 온 영혼을 다해 믿습니다. 우리의 경험보다 크고 우리의 상상보다 더 선하신 하나님, 우리가 용기 잃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서로의 얼굴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발견하게 하시고 더 많은 이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보며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은 여성의날,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명절입니다. ​해방과 자유의 날을 축하하고 우리의 싸움과 연대의 강고함을 확인하는 오늘, 우리의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기억하게 하소서. ​성서가 기억하지 않은 수많은 여인들의 하나님, 지워진 자들의 하나님, 세상이 미워하고 역사가 잊어버린 자들의 하나님, 성소수자들의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2018년 3월 8일 여성의 날, 달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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