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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것'] 7호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던 일 - 소네치카



겨우 이만큼의 힘듦


 토할 것 같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안 좋다. 마음이 안 좋아서일까, 몸이 안 좋아서일까. 알 수 없다. 소화기관마다 염증이 서너 개씩 있을 것 같다. 음식이 지나는 모든 곳이 아프다. 삶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아프다. 어떤 날에는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도 울컥한다. 나는 병원에 가야한다. 내시경 검사를 받고,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복용해야한다. 의사의 조언대로 생활습관을 바꾸려 노력하는 것만으로 많이 나아질 거라는 걸 안다. 잘 살아가는 과정이란 것이 그렇다. 믿어도 좋을 타인에게 내 아픈 부분을 맡기고, 의견을 수렴해야한다. 나는 감히 #MeToo 운동의 물결에 내 아픈 기억을 맡기고 싶다. 


 감히, 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서는 맡길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지금부터 말 할 내 아픔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다. 그래서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로 하고서 몇 자 적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상처가 썩어 문드러져 손 쓸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을 느꼈다. '별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굳이 말을 꺼내기가 힘들다.'라고 생각했던 이 일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내가 정말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읽을 글이라고 생각해도 두렵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감상을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무너질 것만 같다.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덕지덕지 꾸며 이 글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던 일


 9살 때였다. 골목길을 걷는데 개저1이 나를 불렀다. 물건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개저를 따라 계단을 반 층 올랐다. 개저1은 내 뒤에서, 내 바지 위로, 내 보지에 손을 대고 나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위 아래로 흔들었다. 나는 "잠깐만요."같은 말을 하며 벗어나려했다. 개저1이 "잠시만."같은 말을 하며 나를 놔주지 않았다. 그것은 9살 아이를 이용한 자위였다. 나는 이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자세히 말 한 적 없다. 9살 때 성추행 당한 경험이 있다 뿐이었으며, 나쁜 짓을 당했다는 표현으로 에둘러 말했다. 나 혼자서도 글로 쓴 적 없다. 그냥 가끔 이때의 기억이 번뜩이고 지나간다. 개저에게 들린 채로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모습.


 12살 즈음엔 개저2가 뽀뽀를 하라고 했다. 개저2는 아는 사람이었다. 내 얼굴에 여드름이 난 것을 가리켜 “6학년 오빠가 너 좋아하는가보다.”고 농담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집에는 내 할머니와 개저2의 가족들이 있었다. 개저2의 집에 할머니와 놀러 간 것이었다. 개저2가 나를 방으로 불렀을 때, 개저2가 뽀뽀를 요구했을 때, 불쌍한 소네치카는 싫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불쌍하고 어린 소네치카는 개저2의 볼에 뽀뽀했다. 개저2는 말했다. "입에다 해야지." 불쌍하고 어린 소네치카는 이 순간이 빨리 지나길 바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 방을 나오며 '이건 첫 키스는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17살 때는 온라인에 전체공개로 이력서를 게시했다가 피팅모델을 해 볼 생각은 없느냐는 문자를 받았다. 면접을 보기로 했다. 늦은 시간에 개저3의 차에 탔다. "벌써 삼십분이나 됐네, 대화가 필요했나봐."라고 개저3이 말한 것을 기억한다. 내가 기억하는 그 날의 '대화'는 "사실 직원은 충분하다. 네가 필요한 만큼의 돈은 줄 수 있다. 용돈 만남은 어떠냐."라는 질문과 내 손을 잡으며 "손이 차갑다, 마음이 따듯한가보다."라는 농담, 한 손으로 내 가슴을 쓸어 만진 추행, "집을 어차피 나올 생각이라면 아저씨랑 같이 사는 건 안 될까?"라는 구애로 이루어졌다.

 20살 때 사귄 남자친구의 손을 밀어냈다. 그남은 무섭다고 말하는 나를 기어코 범했다. 그건 섹스가 아니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았다. 22살 때 사귄 남자친구에게 관계 도중 아프다고 말했다. 그남이 대답했다.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지잖아." 내 두려움이나 아픔보다 당장의 사정이 중요했던 그남들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 역시 내 두려움과 아픔을 내팽개치고 그남들을 사랑했다. 



수치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데이트 강간'이라는 단어가 싫다. 데이트 상대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다. 서로 사랑한다고 고백한 사이에 싫다는 진심은 너무 쉽게 무시당한다. 나는 나를 피해자라고 말하는 게 어렵다. 그리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잇따른다. 그냥 엄한 일을 겪었을 뿐이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다. 나는 교회에서 머리카락을 염색한 청소년들, 조폭, 간음한 여인, 부당하게 재물을 취하는 세리들에 대해 들었다. 그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해 들었다. 나는 늘 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과 나의 공통점을 생각하며 회개했다. 부디 내 주 예수 그리스도 당신께서 나를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달라고 기도했다. 교회는 내가 죄인으로서 어떻게 회개하며 살아야하는지 가르쳐주었다. 내가 용서받은 것처럼 남을 용서하며 살라고 했다. 피해 경험을 안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어떤 기억이든 떨쳐내기로 다짐하는 것만으로는 떨쳐낼 수 없다. 우리는 수치심에 대해 더 말해야한다. 왜 수치스러운지 말해야한다. 누가 그 수치심을 가르쳤는지 찾아야한다. 


 이 글에서 고백한 것이나 고백하지 않은 것이나, 나의 피해 경험들은 나를 조금 무너뜨리기는 했을지언정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았다. 이 일들에 대해 진즉 말 할 수 있었더라면, 이 일들은 나에게 진정 아무 일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아무도 이 일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말하는 이가 있었을지언정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린다. 그래서 나도 말한다. 더는 내 잘못이 아닌 수치심에 괴로워하지 않기를 다짐한다. 


 여전히 나는 이 글이 괴롭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을 아무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이려 애쓰는 것 같아서 괴롭다. 얼마 되지 않는 힘듦을 있는 대로 긁어 위로를 구걸하는 것만 같다. 나는 이 일들에 괴로워하는 나를 미워한다. 미워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개저나 그남들을 미워하는 일 역시 지친다. 그래서 미운 당신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하고 싶다. 사랑하고 싶어서 말하고 싶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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