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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것'] 9호 이해란, 원래 "시키는"게 아니라 "하는" 겁니다. - 희년 



 뒤척뒤척. 잠이 안 온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후우’ 심호흡을 한다. 그래도 나아지질 않는다. 일어나서 냉수 한 모금 들이킨다. 다시 잠을 청한다. 그래도 잠이 안 온다. 뒤척뒤척. 눈물이 난다. 자존심이 상해서 꾹 참았다. 눈물을 참으니 들이켰던 물이 역류한다. 침을 꼴깍 삼킨다. 심호흡을 한다. 진정이 안 된다. ‘악!’ 소리 지르면 일어났다. 선풍기를 강풍으로 켰다. 빨개진 얼굴과 마음을 식혀본다. 새벽2시이다. 교회 가려면 일찍 자야하는데. 걱정과 분노를 안고 다시 잠을 청했다. 겨우겨우 선잠을 잤다.


 분노. 분노. 분노. 얼마 전에 내 감정을 격렬하게 지배했던 감정이다. 이 감정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나는 현재 한 여성 단체에서 젠더폭력 피해자들을 상담해주는 전화상담가로, 믿는페미 코어 멤버로서 팟캐 PD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 파트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다. 현재 사역하고 있는 부서에서도 나의 관심사를 살려서 부서 선생님들이나 모부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자 했고, 이 계획을 교육 목사님께 알려드렸다. 내가 위와 같은 활동을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밀어주시는 교육 목사님께서는 이참에 교회학교 교사 전체를 대상으로 성교육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교회 내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성교육이라니! 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잘 준비하고 싶었다. 그래서 현재 교사들이 성(폭력)에 대해서 어떤 이해와 의식,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한 후에 거기에 맞게 강의를 준비하기위해 설문조사지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지 그 때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교육 목사님은 교육 전도사들에게 교사 성교육에 대한 취지를 알려주신 후, 강의를 희년이 준비한다고 말씀했다. 다른 전도사들도 이 교육에서 대해 (정도는 다르지만)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흔쾌히 OK 의견을 내주었다. 교육목사님은 “희년 전도사가 진행하는 거지만, 교사 교육인 만큼 다른 전도사들도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교사 성교육에 대해 전도사들과 의논할 게 있으면 같이 논의해요.” 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이 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지 그 때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설문조사지를 만들었다. 편리를 위해 구글 독스를 사용했다. 설문지 내용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집필한 “준비된 부모를 위한 성교육 Q&A – 거침없는 아이, 난감한 어른”의 책과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DIY 가이드 – 보통의 경험” 책의 내용을 직접 인용했다. 설문지의 내용은 ‘성폭력과 관련된 사회적인 통념’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통념’이라고 하면 설문 조사에 참여하는 전도사나 교사들이 정답 찾기에 혈안이 될 것 같아서, ‘성의식 및 성폭력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 라는 주제로 설문지를 완성했다. 익명성을 보장하되 연령별로, 부서별로, 성별로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 사항도 넣었다. 완성된 온라인 설문지가 잘 작동하는지 검사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전도사들에게 설문을 요청했다. 요청한 후 몇 초가 지나서 남자 전도사1(이하 남전1)이 질문을 던졌다. 


남전1 : “어? 이거 전혀 익명성이 보장 안 되는데요?”

나 : 무슨 말씀이세요?

남전1 : 연령과 부서, 성별을 밝히면서 누가 누군지 금방 파악이 되잖아요.

나 : 그런가요? 그런데 이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의 관심은 성인식과 의식에 대해 연령별로, 부서별로, 성별로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고찰하는데에 있어요.

남전1 : 그렇더라도 익명성이 보장이 안 되잖아요. 선생님들이 싫어할 거 같은데요? 예를 들면 (익명성 보장을 위해 부서, 연령은 가명으로 대체합니다 _ 글쓴이) ‘초록’ 부서, ‘어느 정도’ 나이, 남자는 저 밖에 없어요. 그럼 저인게 분명 드러나잖아요.

남전2 : 맞아요. 저도 익명성이 보장 안 되는 것에 염려가 있었어요.

나 : 그런가요? 흠……. (고민 후에) 그러면 인적사항에 부서 체크하는 걸 뺄게요.


(얼마 후)


남전1 : 그런데 설문지 내용 중에 “피임은 여자가 해야 한다” 라는게 너무 그렇네요. 피임은 남자가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세부사항을 집어넣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설문 문항을 설명하는 내용 “다음 문장에 대한 내용이 본인의 생각과 일치하거나 비슷한 방향성을 가진 곳에 체크하세요” 가 별로 눈에 확 안 들어오네요.

나 : 네? 무슨 말씀 하시는 거세요? 만약에 피임을 여자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체크 안하시면 됩니다. 

남전1 : 그런데 이 질문이 성이해, 성폭력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아, 그리고 희년 전도사님. 지난번에 교사 성교육에 대해 전도사들과 같이 논의하기로 했잖아요. 왜 내용 공유 안하세요? 계획서 같은 거 보내 보세요.

나 : 제가 왜요? 저는 이미 교육 목사님께 강의 계획서를 제출했고, 여기에 대해 이미 승인을 받아서 진행하는 거예요. 자세한 강의안은 공유 못해요. 전도사님들도 그 때는 참여자로 있는 거기 때문에 강의안을 미리 밝히는 건 곤란해요. 대신에 개략적인 진행안은 카톡으로 보내드릴 게요.


 이후, 남전1의 질문 폭격은 시작됐다. 너무 어이없는 질문이 많아서 내가 “전도사님. 제가 카톡에 대략적인 계획안 올려드렸잖아요. 읽어보셨어요?” “네 읽어봤어요.”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 전도사님은 성폭력에 대해 잘 아세요?” “아니요. 잘 몰라요.” “모르는데 왜 계속 그런 질문하세요?” 라고 분노를 꾹 참고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리고 남전1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전도사님. 지금 저한테 정말 무례하신 거예요. 만약에 제가 아닌 다른 외부 강사가 와도 이렇게 말씀하실 건가요? 아직 강의 시작도 안했어요. 근데 왜 벌써 피드백을 주시나요? 뭐가 그렇게 두려우세요? 지금 저는 전도사님이 제가 강의하니까 만만해서 시비 거는 걸로 밖에 안 느껴져요.” 라고 말하니까 자기는 그런 의도가 아니란다. 남전1을 상대하기도 벅찬데, 그 옆에서 말을 계속 거드는 다른 남자 전도사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들의 무례한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고, 그들을 이해‘시키느라’ 진이 다 빠진 나는 괜히 서러웠다. 그 때만큼은 사무실은 나에게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퇴근 후, 교육 목사님께 오늘의 상황을 얘기했고, 목사님은 중재해 준다고 말씀하셨다. 이튿날, 주일이 됐다. 목사님은 아침 교사 기도회 시간을 통해서 전도사와 교사들에게 교사 성교육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오후에 어느 정도 설문지 내용이 파악이 됐고, 이에 대해 전도사들과 의논하기위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또다시 남자 전도사들의 무례한 질문과 빻은 소리가 난무했다. 

“설문지 내용이 남자를 겨냥한 거 아닌가요?” “왜 페미니즘인가요? 인권 문제로 가져가야죠” “저는 교사 성교육에 동의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어요. 아, 가만히 있었다면 그것도 동의한 건가요?” “선생님들은 설문지에 답할 의무가 없는데, 왜 강요하세요?” “남자는 시각에 약하잖아요.” “성소수자 성폭력도 다룰 건가요?”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자들도 피해자예요.” 결국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당신들 너무하다고. 나 몰아가지 말라고. 나는 어제 오늘 엄청난 분노와 공포를 경험했다고. 사무실이라는 공간과 동역자들은 결코 나에게 안전하지 않았다고.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들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후, “희년 전도사님. 정말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아……. 또 무례한 질문에 1시간 가까이 친절하게 답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퇴근 후, 교육 목사님께 다시 전화해서 고통을 호소했다. 목사님은 왜 자기 없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냐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고, 희년 소신껏 준비하라고 격려해주셨다. 그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힘든 마음을 달래고자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구매해서 읽었다. 아!! 이거였구나! 이틀 동안 겪은 내 경험이 한 번에 설명됐다. 나는 그들의 대답에 일일이 답할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선량한 의도로 시작된 그들의 질문은 그 의도와 상관없이 나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 내가 그들에게 나의 경험과 지식을 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내 얘기를 경청해야한다는 것, 이해는 ‘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이해‘해야’한다는 것, 설령 상대방이 내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고 해서 감격스러워하거나 고마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내가 겪은 차별의 경험은 상대가 평가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명확해졌다. “나는 쥐뿔도 모르는 남자 전도사들의 맨스플레인에 시달린 거였어!” 그제야 나의 분노와 두려움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일주일 후, 교육 목사님이 전도사들과 회의하는 중에 이렇게 말했다. 

교육목사 : 자꾸 왜 내가 없는 틈에 교사 성교육에 대해 말이 나오는 거야? 대체 뭐가 문제야?

남자전도사들 :.... (아무 말도 못함)

희년 : 아 사실은 그게요...(사건을 설명 후) 결국에는 잘 마무리 됐어요.

교육목사 : (교사 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함 / 그리고 이 분야에서 전문가는 희년 전도사이고, 내가 먼저 강의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만약에 다른 외부 강사가 왔어도 이렇게 대했을 거냐고 말씀하심 / 그리고 할 말 있으면 지금 하라고 함 / 희년의 강의안은 전도사들에 공유할 의무가 없음. 그러니까 희년이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만 줄 뿐, 그 이상의 경계는 넘어가지 말라고 함)

남자 전도사들 : .... 네 ..... (아무 말도 못함)


 결국 남자 전도사들은 남자 목사의 개입이 있고나자 나에 대한 무례한 질문을 그만 두었다. 내가 고통 속에서 그만 하라고 했을 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말을 이어간 그들은, 남자 교육 목사님의 말 한 마디에 자신들을 입을 꾹 다물었다. 허무했다. 그렇지만 교육 목사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지금까지도 시달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더라. 남자들은 아무 것도 몰라도 그 아무 것에 대해서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더라. ‘맨스플레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허세와 허풍, 교만의 말을 아랑곳 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 권력이 그들에게는 이미 기본 값으로 주어지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싶다. “아는 것도 아는 척하고,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면서 맨스플레인하는 남자 전도사들아!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 페미니즘 공부 좀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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