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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것'

[웹진 '날것']찬양유감

믿는페미 2018. 5. 3. 16:51

 

[웹진 ‘날것’] 11호.
“찬양유감”  - 오스칼네고양이

   노래방 좋아하십니까? 저는 왠만해서는 노래방에 잘 가지 않는 편입니다. 노래하는 것을 싫어하느냐고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노래 좀 하네’라는 소리 한 번을 들어보지 못했어도 저는 제가 부르는 노래가 싫지 않습니다. 집에서 샤워할 때, 혼자 있을 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마다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못내 발산하지 못한 흥을 뿜어내곤 합니다. 그럼에도 노래방은 저에겐 가고 싶지 않은 장소입니다. 노래방에 가면 ‘잘 부르진 못해도 적어도 흥을 띄우는 노래를 선곡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분위기를 맞추지 못하면 핀잔을 받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적어도 제가 노래방에 다니던 시절에는 그랬습니다. 무슨 역사적 사명을 띤 것도 아니고 즐기러 간 곳에서 오히려 머리를 굴리며 분위기를 흐리지 않을 노래를 선택하려고 선곡집을 열심히 뒤적거리며 긴장한 채 노래방에 앉아있던 저를 위로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왜 노래방 이야기로 시작했냐면,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만 하지만 정말 부르기 싫은 장소가 또 한군데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가는 장소가 뭐 어디 있겠습니까. 교회죠. 정말 이렇게 뜬금없이 고백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저는 교회에서의 찬양시간이 싫습니다. 찬양을 싫어하느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릴 적 처음 만난 ‘찬미예수’라는 이름이 붙은 찬양집을 너무 좋아해 거의 모든 노래를 피아노 치면서 불렀던 것을 시작으로 찬송가, 복음성가, CCM 등 -사실 이 장르들의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리지 않고 듣고 연주하고 불러본 세월이 짧지 않습니다. 


   그런 제가 찬양 시간을 왜 싫어하느냐! 이유야 간단합니다. 노래에 사용된 음이 제가 부르기에는 너무 높아요. 노래에도 기승전결이 있다면, ‘기-승’ 까지는 마음을 열어 즐거이 부르다가 점점 고조되어 ‘전’ 부분에서 힘을 짜내어 소리를 내었지만 원치 않게 삑 소리가 나서, 옆 사람이 들었을까 걱정되고 민망해서 조용히 입만 움직이며 노래를 마무리 했던 경험이 저는 참 많습니다. 어떤 찬양은 ‘기-승-전’ 모두 음이 너무 높아서 (제가 높다고 하는 기준은 한 옥타브 위의 ‘레(D)’ 이상의 음을 말합니다.) 억지로 가성으로라도 따라 부르다가 힘이 들어서 도중에 옥타브를 낮춰 부르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찬양시간이 즐겁지 않습니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엔 버거운 내 모습만 확인하게 될 뿐인데 즐거울 리가요. 한 두 음만 낮춰주면 저도 목청을 높여 벅찬 마음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찬양시간에는 원음을 낮추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음을 낮추면 고유의 흥이 살지 않고 분위기가 처진다는 것이 여러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노래방에서도 교회에서도, 분위기와 흥을 살리기 위해서는 제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헌데 노래방이야 안가면 그만이지만 교회는 안 갈 수 없잖아요. 

   이게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충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잘 하든 그렇지 않든, 음역대가 높든 낮든 상관없이, 교회에서 불리는 찬송가 및 찬양들은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평균 음역대에 맞춰져 있지 않은 듯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남성들이 부르기 쉬운 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노래방에 가도 어떤 가수가 부른 노래를 다른 성별을 가진 사람이 부를 때는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찬양은 솔로곡도 아니고 대중이 함께 불러야 하는 노래인데 대부분이 남성의 음역대에 맞추어 작곡되었으니, 저와 같은 여성들이 부르기엔 얼마나 곤혹스럽겠습니까.


   많은 교회에서 찬양 인도를 ‘남성’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암묵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성의 목소리로 해야 좀 더 안정적으로 들린다.” 예, 물론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찬양곡들 자체가 남성이 부르기에 편하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남성이 부를 때 더 안정적으로 들리는 게 당연하겠지요. 찬송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노래’ 자체가 불균형함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면 자칫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남성에 비해 얇고 날카로워서 앞에 서는 찬양 인도자나 설교자로서는 적절치 않다.” 

   여자가 찬양 인도를 한다고, 여자가 설교를 한다고, 여자 장로가 세워졌다고 해서 교회 안에 성평등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교회는 여성에게 불편한 공간입니다. 각종 교회 문화나 설교를 들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찬양을 할 때조차 불편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냥 찬양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의 불편함을 토대로 돋워지는 흥과 분위기에서 지금까지는 덩달아 흥겨운 척 장단을 맞춰왔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뛰쳐나가기 보다는, 이곳을 저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편안한 공간으로 바꾸어가고 싶습니다. 너무나 세세한 것부터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오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여전히 많은 것들이 가능할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네요. 우리 함께 돌이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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