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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것']12호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서 - 새말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가정의 달 5월이 시작되었다.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등의 일정으로 교회도 분주한 한 달을 보내고 있다. 가정에 대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이야기 나누면서 우리는 자식으로서, 어머니, 아버지로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배우고 생각해보게 된다. 창세기에 아담은 하와를 만나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족을 형성한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교회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그 사이에 아이가 있는 형태의 가족을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 ‘정상가족’이라고 가르친다. 현대 사회에서 이혼율이 증가하고, 결혼을 하지 않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을 보며 악한 시대, 하나님 질서에 어긋난 시대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셋 낳는 것이 애국이자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2)’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회 안에는 이미 ‘정상가족’의 틀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5월을 소외된 채 보내는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나는 논과 밭이 보이는 시골에서 성장했는데, 시골교회에서 같이 자란 아이들 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조손가족이 절반은 되었다. 이 사이에서 소위 ‘정상가족’을 구분하는 것은 참 무의미한 일이다. 전국의 조손가정은 2015년 기준 15만 3000가구에 이르고(2015, 인구주택총조사), 한부모 가정은 212만 7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10.9%에 달한다(2017, 여성가족부). 1인 가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2016년 기준 1인 가구는 539만 8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27.9%에 해당하며, 자녀 없이 부부 둘만 사는 가구도 299만 5000가구로 전체가구의 15.5%이다(2016, 통계청). 이 밖에도 미혼모, 입양가족, 장애인 가족, 다문화가족, 동성가족, 동거가족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이미 한국사회에 존재한다. 하지만 교회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보이지 않는 극소수의 일로 여기고 계속해서 이상적인 가족에 대해 말한다. ‘정상가족’을 마땅히 추구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친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선 안에 들어가지 못한 가족들은 가족이라고 인정받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지워진다.


  나는 현재 1인 가구로 살고 있으며, 앞으로 비혼으로 살아가야겠다고 75%정도 마음먹은 상태이다. 비혼을 생각할 때에 가장 나를 머뭇거리게 하는 요인은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매형제가 없는 외동인 나는 나중에 어머니, 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시게 되면 가족 하나 없이 어떻게 하지? 외로운 건 친구를 만나면 된다고 해도, 질병이 생기면 어떡하지? 현재 의료시스템에서 보호자는 오직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이거나 법적으로 배우자인 사람만 해당한다. 입원을 할 때, 수술을 할 때, 심지어 나의 죽음을 결정할 때에도 법적인 보호자가 필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친구나 친밀한 사람, 이웃은 나의 보호자가 될 수 없다. 2014년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였으나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가 열심히 지켜낸 ‘정상가족’의 범주 안에 들어간 가족구성원들은 행복할까? 나는 맞벌이가정에서 자랐고, 어머니는 직장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모두 잘 해내야했다. 나를 입히고, 요리를 하고, 내 학교생활이나 공부할 것을 챙기는 건 모두 어머니의 역할이었다. 여성과 남성의 가사와 양육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은 가정에서 더 많이 노동하게 된다. IMF이후로 남성의 외벌이로 가족의 생계를 지탱하기 어려워진 한국에서 여성은 결국 가사노동과 경제활동이라는 두 가지 책임을 동시에 감당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는 아직도 희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구성원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공간은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아내폭력, 아동폭력도 빈번하다. 2016년 한 해 45614건의 가정폭력이 검거되었고 이중 70%가 아내를 대상으로 한 남편의 폭력이었다(2016, 경찰청). 신고 되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더욱 많은 여성, 아이, 노인들이 가족 안에서 폭력을 당하며 살고 있다. 가부장의 권위를 중요시하며 ‘진정한 가족’ 이루기를 권해온 교회는 이 병들어있는 현실에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신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라고 함으로써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제시하고, 이로써 가부장주의적 가족의 의미를 상대화시켰다(강남순. 『페미니즘과 기독교』).” 이제 우리는 ‘정상가족’이라는 허구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상상하며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정상가족’이라는 나의 신념이 깨진다고 해서,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지고, 내 신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생각이 넓어지고, 더 많은 사람이 포함되고, 더 괜찮은 세상이 되는 것뿐이다.


“회개하라, 그리고 그동안 교회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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