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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 것’] 10호
이상한 여자 게으른 여자 – 달밤



 대학교 때 들어간 동아리는 도시에서 집을 빼앗기거나 잃어버린 철거민, 홈리스와 연대하는 주거권 운동 동아리였다. 동아리 방이 무척 더러웠지만 나는 지저분한 환경에 어렵지 않게 적응했다. 어려웠던 건 운동권 특유의 거친 문화와 매주 목요일에 나가는 노숙인 현장 상담일 뿐 동아리실의 위생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1년이 지나 다음해가 되자 신입생이 들어왔다. 두 명이었다. 사람이 잘 들지 않는 동아리에 신입생이 둘이나 왔다며 모두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조차 2년 만에 생긴 회원이었다. 


 막 들어온 신입생 두 명이 동아리 방 상태를 보고는 지저분함에 기함하여, 날을 잡고 대청소를 해 놨다. 가보니 오래되어 녹슨 철제 캐비넷에 예쁜 시트지까지 붙어있었다. 동아리원이 모두 모였을 때, 열심히 청소한 신입생 A는 분노에 차 있었다. “이렇게 지저분하게 살 수 있으며… 정말 이해가 안가는 건 여기에 여자가 있었는데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더러웠냐는 거에요. 여자가 있는데!” ??????? 신입생 A는 여성이었고, 이 말은 나에게 들리라고 한 말이었다. 그 시점에 신입생이 아닌 여성은 나뿐이었으니까. 남자인 회장 선배와 내 눈이 동시에 커지며 서로 마주쳤다. ‘내 잘못인가…?’ ‘쟤 잘못이었나…?’ 물음표가 오갔다. 회장은 겸연쩍게 웃으며 “하, 그러니까 달밤이는 여자가 아니었던 거예요!”하고 말했다. 거기 여자가 있는 줄 몰랐거나, 내가 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몰랐거나, 혹은 공간을 깨끗하게 하는 게 여자가 할 역할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나도 그 순간에야 알았다. 그 공간을 깨끗하게 하는 역할이 여자인 나에게 있었다는 걸. 1년 여 간 다른 멤버들과 함께 시위, 집회 현장과 학내 공간을 누비며 열심히 활동했는데. 내가 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며 그저 동아리원으로서 살아왔는데, 내가 ‘여자’였다니. 순간 나는 A에 의해 보통사람이 아닌 ‘여자’로 분류되며 심지어 공간을 깨끗하게 가꿀 의무를 소홀히 한 게으른 여자가 되었다. ‘여자’는 깔끔하다-> ‘여자’는 더러운 공간을 못 견딘다 -> ‘여자’가 있는데 어떻게 공간이 더러울 수 있나, 너는 ‘이상한 여자’다 가 되었거나. 게으른 여자거나 이상한 여자거나. 어느 쪽이든 나는 정상적인 ‘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여자’가 아니게 한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1년 간 아무도 나에게 ‘여자’로서의 역할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 A는 그 공간에 ‘여자’역할을 끌고 들어왔다. 순간 무언가가 작동했고,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더러운 공간에 대해, 어째서 나는 수치심을 경험하고 남자인 나머지 멤버들은 ‘여자인 달밤이가 역할을 안했네’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다름 아닌 여성에 의해서. 당시에 나는 여성주의의 ‘ㅇ’도 몰랐으므로 내가 겪은 일이 무엇인지 해석할 수 없었다. 


 2016년 4월 평화교회연구소 세미나 <여성은 교회에서 어떻게 배제되는가?>에서 최순양 박사는 한 교회 내 일화를 소개했다. 주일예배 후 공동식사에 관련한 노동이 여성들에게만 지워져있으니 이를 모두의 노동으로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일자, 연령이 높은 층의 여성들이 반대하며 나섰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교회의 주방일을 담당했던 그들은 젊은 여성들이 게으르거나 이기적이라고 여기며 논의를 막았다. 여성 내 세대 간 갈등의 양상으로 번진 것이다. 이런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진보적인 성향의 어느 교회에서, 주일 공동식사 준비가 여성들에게 편향되어 있고 워낙 고되니 음식을 준비하는 노동자를 특정하여 비용을 지불하자는 논의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원로급인 여성 권사님이 “그 꼴은 못 본다.”며 매 주일 음식을 본인이 다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다른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어째서, 변화를 꾀하려 할 때 우리는 여성 안에서 먼저 갈등을 경험할까…?

 

 세미나에서 최순양 박사는 교회가 교육하는 가족 강화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았다. 훌륭한 어머니, 행복한 가정, 내조 잘하는 아내 등으로 여성의 이미지를 국한해 교회 여성의 능동적인 활동을 막는다는 것. 교회가 여성을 ‘좋은 어머니’로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주체적 삶이 아닌, 남편을 돕고 아이들을 길러야 하는 삶을 살도록 강요한다. “애초에 교회의 신앙교육에 여신도들을 적절한 ‘어머니’로 형성해 가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볼 때, 여성들이 교회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이행해 가면서 자아실현을 한다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여성들을 또 다른 ‘역할’로 묶어 놓는 것이지 여성들의 주체적인 ‘젠더 협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최순양/ 뉴스앤조이, <권사님을 ‘밥하는 엄마’로 고정하지 말라>, 최승현 기자) 


 여성은 교회에서 좋은 어머니가 되는 역할의 연장을 경험한다. 교회학교 유초등부 교사이거나 전도사, 청년부 ‘부’회장이거나 서기 회계, 여선교회 일원으로서 주방일을 하거나 꽃꽂이에 동원되며 심지어 결혼하지 않은 남성 담임 목회자의 빨래와 먹거리를 챙기는 등 살림과 돌봄 노동을 감당한다. 교회는 이 모든 것을 여성으로서의 마땅하고 옳은 역할로 보며, 여성이 누군가를 보살피고 가꾸며 조력하기를 기대하고 ‘교육’하고 있다. 우리는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이를 교육받는다. 슬프게도 여성들이 교육받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가부장제에 기반한 가족 강화 이데올로기다. 


 재미있는 일화는 또 있다. 친한 친구가 교회 주일 공동식사 노동을 모두가 분담하자며 회의를 하던 중 겪은 일이다. 중년 부부가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여성분은 지금까지 별다른 불만을 얘기하지 않고 묵묵히 주방 일을 해오던 분이었다. 회의 중에 그 부부 중 남성이 “솔직히 남자들은 이런 일 하기 싫거든.” 하고 용기 있는 발언을 했다. 친구가 흥분하며 “여자들도 하기 싫어요!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뭐 좋아서 하는 줄 아나. 얼마나 힘든데. 밥하기 싫으면 밥을 먹지 말아요. 맥 딜리버리를 하던가!” 하고 말했다. 그러자 언제나 말없이 앉아있던 여성분이 벌떡 일어나 짝짝짝 박수를 치더라는 것이다.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서 이제 주일 공동식사 노동은 여선교회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고, 반찬 팀과 설거지 팀으로 나눠 자발적으로 순서가 돌아간다고 한다. 요리를 할 수는 없다며 설거지 팀에 들어간 남성들이 고된 노동 강도에 못 이겨 반찬 팀으로 옮기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교회에서 우리 모두는 가부장제에 기반한 가족 강화 이데올로기를 교육 받는다. 남성 뿐 아니라 여성 또한 성별 분업을 수행하면서 이를 내면화한다.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고 헌신하며 긴 세월을 살아온 성도라면 이 질서를 깨는데 불안함과 불쾌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밥하기 싫으면 빅맥을 먹던가!” 소리친 친구에게 박수를 보낸 성도님처럼, 그간의 성별 역할을 수행해 온 사람과 이를 바꾸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누군가에게는 그간의 삶을 부정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더 나은 역할을 재분배하는 장이, 누군가에게는 이미 살아온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도 변화 앞에 물러서지 않는 협력이 장이 열리는 길 말이다. 교회지만 또 교회니까, 교회라서 가능한 그런 길은 없을까…? 


“여성에게 가부장제의 성별 분업을 가르치는 자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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