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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것'] 8호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 폴짝



 “내가 왜 엄마아빠한테 순종해야해. 모부는 자식이 순종해야할 대상이 아니야. 그러니까 나한테 순종을 강요하지 마.”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모부와 늘 같은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모부는 대체적으로 허용적인 양육철학을 고수했지만 나와 갈등을 겪을 때면 순종하지 않는다며 나무랐다. 첫째니까 본이 되어야한다는 것이 순종을 요구하는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사실상 감정싸움, 힘겨루기에 가까웠다. 나는 순종하는 순간 모부와의 싸움에서 진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들을 모부의 말대로 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렇게 나에게 순종은 자유의 반대말. 강요와 억압, 수동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그래서 그럴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 줄곧 나는 ‘순종’이라는 단어와 부딪혔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순종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과는 별개로 교회에서 순종은 ‘만능열쇠’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에게든 순종은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교회에서 권위(권력)를 가진 사람들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라.”는 등의 말로 모든 것을 단순화시켰다. 순종은 우아하고 교양 있는 얼굴을 하고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순종을 요구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을 따르도록 했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무려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창한 이유를 붙였다. 순종이라는 말이 없으면 교회는 돌아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회는 순종을 사랑한다. 이쯤 되면 교회 안에 순종 신드롬이 있다고 불러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그리고 유독 교회는 여성들에게 그 순종을 자주 요구했다. 사역자들이나 연장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남자친구에게도 순종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성경의 권위에 힘입어 교회는 위계를 만들었고, 여성은 여성의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가장 아래에 머무르게 했다. 그리고 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질문들을 차단했다. 그렇게 순종은 교회나 신앙 공동체 내에서 ‘참자매’이자 좋은 사모의 덕목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순종하지 않는 여성, 의견을 돌려서 말하지 않는 여성은 참자매가 될 수 없었으며, 더 나아가 ‘이기려든다’거나 ‘싸움을 건다’고 받아들여졌다. 교회 청년부 회의에서 담당 목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던 리더들 중 후에 담당 목사와 싸웠다는 소문이 돈 건 오직 여성인 나 뿐이었다. 그렇게 교회는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우리의 언어와 질문을 빼앗았다. 


 여성은 잠잠해야 한다는 말. 남성이 여성의 머리이니 순종하라는 말. 여성의 감정적이어서 교회 내 큰 결정을 맡길 수 없다는 말. 여성은 영혼을 돌보는 역할이므로 영유아와 초등부 사역에 어울린다는 말. 여성의 설교는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말. 이것은 교회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더불어 이것은 여성 차별이자, 혐오이고, 교회와 구성원들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잠잠해야 하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감수성 없는 차별적인 언행으로 교회의 ‘평등’과 ‘사랑’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들이다. 여성과 남성 모두 누구에게 종속되거나 순종할 필요 없는 그저 하나의 인간이자 존재들이다. 여성이 감정적이라는 것은 인류 전체를 향한 왜곡이고, 교회 공동체의 중요한 결정은 일부 남성들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이 함께 논의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영혼을 돌보는 것은 여성의 역할이 아닌 성숙한 인간의 역할이며, 여성의 설교가 은혜 되지 않는 다는 말은 ‘나는 성차별주의자다.’라는 고백이다. 


 교회 내 여성폭력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나의 ‘자매’들 이었다.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순종에 저항했던 이도 있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언어적인 희롱을 공개적으로 고발한 이도 있다. 또 성차별적인 설교나 교회 내 분위기가 불편하지만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참고 넘어간 이들도 있다. 나는 “당신이 믿는 하나님(성차별주의자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고백한 뒤 교회를 뛰쳐나왔지만 같은 질문을, 같은 언어를, 같은 울음을 가진 이들이 있었기에 다시금 성평등한 하나님 나라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 아마도 더 많은 이들이 교회를 뛰쳐나오고, 싸워야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신하건데 지금 우리의 목소리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그리고 그 외침의 끝에는 우리가 바라는 교회와 닿아있을 것이다. 나는 연일 계속 되는 #Me Too의 말하기와 #With You의 연대 속에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믿는 페미들의 분노와 움직임 속에서 우리가 바라는 교회, 모두가 평등한 교회가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러므로, 여전히 성별이분법과 고정적인 성역할에 갇혀 평등한 하나님 나라를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고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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