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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 것]
2018-3. 고부갈등은 없다.
- 폴짝



할머니는 절에 다니신다. 불교신자가 아닌 나는 잘 모르지만 불심도 깊으신지 절에 가야 한다며 오래 기다려 잡은 병원 예약을 미루시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면 꼭 유명하다는 절에 들러 공불을 드리신다. 그리고 그런 때면 늘 자신의 기도제목을 읊어주신다. 손녀딸 대학원에 붙으라고 열심히 기도했더니 부처님이 떡! 붙을 것이라고 했다는 할머니의 말과는 다르게 내가 대학원에 줄줄이 떨어진 것을 보면 기도빨이 영 약하신 듯 하지만 모든 기도가 그렇듯 결과보다는 정성과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할머니의 소망과 염원을 담은 기도는 늘 자식들을, 손주들을 향해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기도에 등장하지 않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할머니의 며느리들. 나의 외숙모들이다.


 할머니는 슬하에 아들 넷, 딸 둘. 그리고 며느리 셋, 사위 둘을 두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명절에 할머니와 숙모들은 싸웠기 때문에 이들에게 평화로운 시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가족들의 증언에 의하면 할머니는 자식들의 결혼을 늘 반대했고, 자식들은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감행했다고 한다. 똑같이 탐탁치 않아했던 며느리와 사위들인데 할머니의 불만 레이더에는 줄곧 며느리들만 걸렸다. 사위들에게는 늘 고맙고, 조심스러웠지만 며느리들은 늘 마음에 차지 않았고, 서운해 했다. 명절마다 높아지는 언성과 끝끝내 누군가 울거나 뛰쳐나가야 끝나는 상황에서 나는 숙모들이 미웠다. 싸움의 근원이 숙모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막내 삼촌은 선을 볼 때마다 ‘형수들 안 닮은 사람’을 찾는 게 가장 중요했고, 식구들은 그런 삼촌의 마음을 이해하는 상황이었으니 다들 비슷했구나 싶다. (그리고 막내 삼촌은 아직도 결혼을 못했다.)


할머니가 숙모들을 향해 세우고 있는 레이더에는 늘 같은 불만들이 접수되었다. 할머니에게 먼저 안부전화를 하지 않는다거나, 할머니를 자신들의 집(할머니에게는 며느리와 아들이 함께 사는 집이 아니라 ‘아들의 집’인 그 곳)에 오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 며느리들이 편안한 집안 분위기를 만들지 않아서 아들들이 겉돌고 형제끼리 싸운다는 것. ​숙모들에게는 며느리와 아내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역할 불이행이라는 죄명이 선포되었다. 하지만 명절과 제사, 김장 때 가장 먼저 내려가는 이들은 숙모들이었고, 챙겨주고 싶어도 도통 집에 들어오지 않는 할머니의 아들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숙모들이었고, 할머니가 자식들 집에 올라오셨다가 다시 시골로 내려가실 때 직접 운전해서 모셔다 드리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숙모들이었다.


‘명절’이라는 키워드를 듣자마자 나는 숙모들이 떠올랐다. 그 동안 숙모들은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었나 생각해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할머니와 숙모의 관계에서 이상하리만큼 숙모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숙모들의 이야기는 늘 숨겨져있다가 감정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 되어서야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렇다고 한 번씩 폭발하는 그들이 이야기가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숙모들이 이야기를 했을 때 그들의 이야기와 개인의 사정은 용납되지 않았다. 숙모들의 사정은 핑계와 이기심, 나태함 등으로 읽혀질 뿐이었다. ​가족들 중 누구도 숙모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지 않았고,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저 숙모들이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잘 수행하나를 검사했을 뿐.


그렇기에 지금껏 가족들이 숙모들에게 내린 판결은 부당하다. 그리고 할머니와 삼촌들을 포함한 다른 가족들 중 누구도 판결을 내릴 권리는 없다. 숙모들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이 가족의 화목을 해치는 근원이 숙모들이라고 지목했던 것은 정말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게 가장 간단했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에는 모두가 한 마음 모아 미워할만한 악역이 있어야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을 함께 미워하면서 다른 등장인물들의 작은 흠 정도는 눈감고 넘어가줄 수 있고, 정당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숙모들이 악역이 되는 순간 자식들과 손주들을 대놓고 차별했던 할머니도, 가족을 돌보는 일과 노모를 향한 효도를 숙모들에게 떠넘긴 삼촌들도,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숙모들을 상식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나의 엄마와 아빠도, 그리고 그들의 싸움을 ‘전형적인 고부갈등’이라며 귀찮게만 여겼던 나도 가족의 불화와 불행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나는 많은 시간 할머니와 숙모들의 갈등을 고부갈등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가혹한 시집살이를 당해서 이 정도는 시집살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할머니와 조금 덜 살가운 며느리들의 갈등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이 갈등 상황을 고부갈등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 고부갈등이라는 단어는 이 갈등의 책임을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만 부과하기 때문이다. 이 단어에서 갈등을 유발하고 증폭시키는 다른 이름들은 배제되어었다. 갈등을 조장하는 삼촌들은 사라졌고, 그것을 방관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간섭하는 다른 가족들의 이름도 지워져있다. 이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존재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차별적인 구조와 그로인한 지나친 기대와 과업 등의 갈등 배경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전통적인 가정에서(사실 이것을 전통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누구도 착취를 전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성에게 응당 해야 한다고 부과한 일을 여성 스스로 하치않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동시에 여성들을 질투하고 시기하고 다투는 트러블 메이커로 전락시킨다. 그렇기에 고부갈등은 없다. ​그 갈등은 원래 고부의 것이 아니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할머니는 “이꼴 저꼴 다 보기 싫으니 내려오지 마라”고 이야기 했지만 시장에서 가장 비싼 꽃게를 사다 내려오는 식구들 먹을 간장게장을 담갔다. 그리고 다른 명절과 다름없이 숙모들은 가장 먼저 시골에 내려갔다 가장 늦게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명절 연휴 내내 식구들을 불러놓고 저녁을 차리겠지. 엄마는 벌써부터 어떻게 하면 다른 가족들의 갈등을 잘 중재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나는 올 명절도 평화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싸울 때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숙모들과 할머니의 목소리가 더 자주, 더 잘 들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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