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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 것’]
2018-1호. 익숙하지 않은 기대
​- 오스칼네고양이


어느 순간 난 두려워졌다. ‘믿는페미’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글을 쓰고 인터뷰를 했다. 나의 생각에 적잖은 공감과 응원 그리고 기대가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때를 만난 듯 쏟아지는 여성주의 관련 책과 콘텐츠들 사이에서 나는 무슨 이야기를 보태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비슷한 이야기를 보고 반복하며 쌓이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함께하는 동지들은 힘을 내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운동을 해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자꾸만 뒤로 숨고 싶어졌다.


2018년 1월, 해가 바뀌고 마음을 새롭게 다잡고자 개신교 계열의 한 수도원으로 향했다. 외부와 단절되어 아무 소식도 듣지 않고 휴대폰도 반납한 채 침묵하고 기도하는 그 시간은 참 좋았다. 그러나 거기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다. 버젓이 자신의 손과 발이 있는데도 움직이지 않고 입만 살아있는 것 같은 남성 목사는 그곳에도 있어서 나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묵상 나눔 시간에 남성들만 앞 다투어 얘기하는 것과, 식사시간 때마다 대표기도에 나이를 불문하고 남성들만 세워지는 것이 매우 거슬렸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식판은 본인이 치우세요.”라고 처음 보는 그 남자 목사에게 말했어야 했나? 식사 대표기도 내가 하겠다고 자원할 걸 그랬나? 거슬리는 것 모두 문제제기를 똑바로 했었어야 했는데, 왜 불편하고 싫은 티를 내지 못했지?’ 등의 생각이 떠오르는 한 편, ‘여기까지 와서 내가 이런 생각을 꼭 해야 하나? 가뜩이나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차서 나도 내 모습이 싫은데, 여성주의를 핑계로 그냥 화를 내고 싶은 건 아닐까? 그냥 즐거울 수는 없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차라리 이 구조에 순응하며 명예 남성으로 살려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까지 드는 것이었다.
비단 그 수도원에서만 위와 같은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요즈음의 내 상태가 그랬다. 왜 그리도 모든 것이 귀찮고 숨고 싶은지. 날 선 사람으로 살기도 싫고 그렇다고 비겁하게 남아있기도 싫은데, 도무지 어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사람들을 만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죄책감이 더해질까봐 나를 자극하는 책과 강연도 멀리했다. ​그저 앞서 나가는 이들이 이 구조를 조금씩 바꾸어주면, 나는 거기에 무임승차하고 싶었다. 언제부터 내 안에 이런 절망과 두려움이 가득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고백컨대 지금도 여전히 ‘무임승차’ 중이다. 아직 두려움이 남아있다. 분노만 할 줄 알았지, 소망을 가지고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것을 두려워하며 한 발 뒤에 숨어있는 나. 그러나 내 앞에서 매일 자신의 몫을 해내며 낙후된 구조를 바꾸어가는 이들이 보인다. 오랜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한다는 ‘송구영신’ 예배를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드리지만, 알다시피 새로운 것은 그렇게 오지 않더라.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내일은 ‘구시대적이고 낙후된’ 것으로 만들어가는 동지들이 있을 뿐이다. 덧붙이자면 그 수도원에서의 시간이 나에게 영 쓸모없던 것은 아니어서, 겹겹이 쌓인 무력감과 절망을 조금은 벗어버리고 기대와 설렘을 품고 돌아왔다. 들뜨지 않는, 익숙하지 않은 기대감이다. 현재에 절망하지 않고 매일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믿는페미’를 비롯한 여성들 옆에, 무임승차일지라도 어떻게든 붙어 있어야겠다. 그래야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기쁨을 같이 누릴 수 있을 테니까.


​​결론: 믿는페미에서 발행하는 웹진 ‘날 것’을 기대하세요. 큰 변화는 아니지만 날마다 새 날을 만들어가는 글과 공감의 힘을 믿으세요.
(*2018년을 맞이하여 믿는페미 웹진 ‘날 것’을 다시 발행합니다. 2-3월의 주제는 ‘송구영신’과 ‘명절’입니다. 일곱 명의 필진이 이 주제 안에서 자유롭게 글을 써나갈 예정입니다. 웹진 ‘날 것’은 매주 목요일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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