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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 것’ 2018-2호.
​​함부로 평가받아도 되는 무례한 명절을 보내며, 그리고 떠나보내며.
-희년


곧 명절이다. 그다지 반갑지 않은 명절. 대체 언제부터 명절은 나에게 불편한 날이 되었을까? 분명히 어릴 적에는 기쁘고 즐겁다 못해 기대되고 설레는 날이었는데 말이다. 명절 때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의 윷놀이, 지글지글 맛있는 전과 튀김들(이 음식들은 대체 다 누가 만들었을까?), 안부 인사를 드리면 받게 되는 쏠쏠한 용돈들. 이런 요소들이 나로 하여금 명절을 더 기대하게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이후, 나에게는 명절이 되기 몇 일전에 늘 하는 의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이어트’이다.


명절이 다가오기 전에 인터넷 기사에 순위권에 드는 내용은 “명절에 듣기 싫은 말”이다. 그 중에 Top 5 안에 드는 말은 바로 “몸매 관리 좀 하라” 라는 핀잔과 압박이다. 나 역시 명절 때마다 친척들로부터 “안 본 사이에 살 쪘다.” 혹은 “희년은 살만 빼면 예쁠텐데. 살은 언제 뺄래?” 라는 말을 지금까지도 듣고 있다. 이렇게 ​나의 몸에 대해 무례하게 평가하고 해석하는 친척들의 조롱이 견디기 힘들어 초등학교 6학년 때에 독하게 살을 뺐다. 물론 요요도 독하게 찾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몇 년 동안 계속됐다. 언제까지 이 불편한 농담을 견뎌내면서 명절을 보내야 할 것인가? 나는 그들의 무례한 성적 발언에 계속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어야 하는가? 다이어트에 실패해 불어버린 내 몸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친척들의 반응을 언제까지 두려워해야할 것인가?


2년 전의 일이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우리 집은 매 년 경기도에 있는 큰엄마 집에서 명절을 보내기 때문에 명절 당일 아침에 친척오빠가 우리를 데리러 온다. 그 당시 설날 전날 무리하게 몸을 쓰는 일의 후유증으로 허리에 근육통이 심해 걸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큰엄마 집에 갈 수 없었다. 몸져 누운 나의 상태는 속옷을 착용하지 않은 무방비 상태였다. 오빠는 아픈 나를 살피러 방으로 들어왔는데, 갑자기 내가 덮고 입던 이불을 확 걷으면서 “희년! 꾀병 부리지 말고 일어나!” 라며 거칠게 내 몸을 다루었고, “너 살 진짜 많이 쪘다. 관리한 거냐? 누우면 살 찌니까 일어나.” 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오빠는 장난으로 한 말이겠지만, 그 무례한 장난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명절의 분위기를 망칠 수 없어서 간신히 눈물을 참고 오빠의 지나친 농담을 웃음으로 받아쳐야했다. 화가 났고 수치스러웠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친밀한 사이라는 이유로 20대 후반이었던 나의 몸을 함부로 다루고 거칠게 평가할 권력이 어디서 나오는가? 언제까지 그 남성은 ‘농담’이라는 명목으로 나에게 계속해서 무례하게 발언하고 행동할 것인가? ​예측할 수 없는 불편한 농담을 ‘웃으면서’ 소화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 가족들이 집을 떠난 후, 홀로 집에 남아있던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허리를 일으켜 화장실 거울 앞으로 갔다. 그리고 윗옷을 걷어서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 살이 얼마나 쪘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나의 몸을 함부로 평가하는 무례한 말에 웃음으로 응대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1년 전의 일이다. 설날이 다가왔고 일전과 마찬가지로 친척오빠는 우리를 데리러 집에 왔다. 1년 전에 했던 다짐을 마음속에 새겼다. 아니나 다를까. 오빠는 만나자마자 나의 몸을 꼬집으며 “희년은 또 살쪘네? 왜 이렇게 거대해졌어?” 라고 말했다. 기분이 팍 상했다. 그리고 정색하며 말했다. ​“오빠는 1년 만에 만난 친척동생한테 그렇게 밖에 말을 못해? 보자마자 무슨 살 얘기야. 할 얘기가 그렇게 없어?” 잠시 집안에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을 견뎌야만 했다. 웃지 않았다. 그리고 차를 타기 위해 내려갔다. 차 안에서도 오빠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대화를 시도하려는 오빠의 손길을 뿌리쳤고, 오빠의 농담이 재미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뿜어냈다. 안 그래도 속상한 데 명절 음식 장만에 분주한 새언니들, 그 옆에서 텔레비전 보면서 밥 먹기를 기다리는 남성들의 모습을 견딜 수 없어서 밥을 대충 먹고 몰래 집에서 나와 20분 이상을 걸어 카페로 갔다.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이키면서 20년 가까이 무례한 평가 속에서 보내던 명절을 이제 떠나보내고 싶었다. 친척이라는 이유로 무례한 그들과 명절을 같이 보낼 의무는 없었다. 나를 걱정한답시고, 나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이유로 던지는 그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의 에너지를 그런 곳에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은유작가의 말이 절절하게 와 닿았다. 1년에 2번뿐인 명절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무례한 질문에 일일이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답해야하는 약자임이 너무도 명확하게 확인됐다. 그리고 결심했다. 수도 없이 나의 몸에 대해 평가하는 그 자리, 은근한 성추행과 성희롱이 만연한 그 자리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그리고 부모님께도 내 의견을 말씀드렸다. “내년부터 나는 명절에 큰엄마 집에 안 갈 거예요.” 아침에 오빠의 농담에 정색으로 받아친 내 모습에 당황해하던 엄마였지만 이내 나의 이야기를 들으신 후 나의 의사를 존중해주셨다.


결론적으로 나는 올해부터 명절에 큰엄마 집에 가지 않는다. 그러나 명절 아침, 오빠가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을 데리러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여전히 나를 향한 오빠의 무례한 평가의 첫마디가 무엇일지 두렵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나의 몸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던 무례한 명절을 떠나 보내게 된다. 이번 명절에 무엇을 할지 결정된 것은 없다. 그러나 명확해진 생각은 있다. 그것은 바로 친척들은 생각보다 친밀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1년에 2번 보는 친척들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점, 친척들간에 실례가 되지 않을 범위로 낯선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그들에게 내 몸을 평가할 권리를 부여해준 적이 없다. 부여받지도 않은 권리를 남용하는 이 세상의 모든 친척들이 다 사라지기를 바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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