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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것'] 41호

살아간다, 죽어간다.

-달밤 


삶이 죽음과 반대말인 듯하지만 사실 살아가는 일은 죽어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줄곧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이지요. 타인의 죽음을 경험하거나 갑자기 발생하는 사고를 겪고 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운명을 깨닫고 겸허해지곤 하지만 그때 뿐, 다시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을 잊게 됩니다.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지 않은 지 한참이 되었습니다. 여행자처럼 하나님 뜻을 지키며 살다가 이다음에 죽으면 천국에서 영원히 살리라 하던 고백에 무심해졌달까요. 이다음이 아니라 지금 사는 여기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된 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살고 우리가 사는 곳, 여기를 하나님 나라로 완성해야 한다는 사명에 마음이 움직였지요. 그렇다면 소망은 죽은 뒤가 아니라 지금, 내가 발 디딘 이곳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있고, 어떻게 살까- 동시에 어떻게 죽어갈까가 중요한 고민이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다니던 교회에는 여자 어른들이 많았습니다.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전도사님 등 다양했지요. 하지만 스무 살이 지나면서 점점 여자 어른들을 볼 기회가 줄어들었어요. 몇천 명 규모이던 교회에서 나와 작은 교회로 사역을 나가면서, 또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점점 시야에서 여성들, 그러니까 중년의 여성과 노년의 여성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에는 중년의, 고령의 남성들이 많았습니다. 기독운동단체에서 일하며 만나는 목회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어요. 중요한 의제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거나 소통할 중직에 있는 분들도 거의 남성이었습니다. 어쩌다 가끔 만나게 되는 여성 교수나 목사, 강사는 비교적 젊은 층이었지요.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던 걸까요...? 


그러던 중 감리교 여성들이 모여 운동하는 단체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사장이 여성이더라고요! 신선한 충격! 늘 굵직한 위치에 있는 고령의 남성들에게 익숙해져 있다가, 여성이 이사장을 하고 원장을 하고 이사를 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연구원 모임을 하고 이사 회의를 하는데-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어른 여성들을 여기서 만날 수 있더라고요. 


여성이면서 전도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 목사의 길을 걷고 있는 분, 아이를 키우며 사는 분, 강사 활동을 하는 분, 교수인 분, 기혼으로 사는 분, 비혼으로 사는 분,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으시는 분, 배우자와 함께 노년의 인생을 보내고 계신 분, 자식의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 목회를 은퇴하고 어머니를 돌보며 사는 분, 죽음을 준비하고 계신 분 등. 


이런 여성들을 하나둘 만나다가 아주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납니다. 사회에서 완성되거나 완성되고 있는 남자 어른들만 보며 살다가, 다양하게 자신의 인생을 사는 여자 어른들을 만나니 그제야 알게 되더라고요. 아, 내가 상상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구나, 여성으로서 자신의 전성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 어떤 모양으로 살게 되는지, 삶의 마무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눈으로 보고 어른들을 만나니 알겠더라고요. 아, 목사로 살면 저분처럼 되는구나, 비혼으로 살면 이런 모습이구나, 노년의 삶의 마무리는 이렇게 하게 되는구나, 하고요. 어른들을 보며 내 삶을 길게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달까요.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또 어떻게 꿈꾸면 될지 말입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띈 케이스는 비혼으로 살며 노년을 지나고 있거나 삶을 마무리하는 어른들이었습니다. 모두 목사의 길을 걸었고 은퇴하셨지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말투, 행동에서 그동안 걸었던 삶의 궤적이 드러나는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고문으로 계신 목사님은 언젠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외로워, 참 외롭다. 결혼했으면 아이를 하나 낳아. 안 그러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하고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어차피 자식도 안 찾아와요!” 일동 웃음. 결혼하신 분도 결국 혼자가 되고, 자식이 있어도 노년의 외로움은 쉽게 채워지지 않습니다. 삶의 마무리에서 가족이 있으면 든든하고 포근할 것 같지만 실은 서운함만 늘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결국 다시 사람은 혼자고 죽음을 향해 간다는 걸 깨닫게 되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가 아닐까요. 그간 사귀어온 친구들과 가족을 넘어가는 관계를 맺어왔던 사람들만이 곁에 남는 시기. 여성 어른들의 삶의 마무리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여성들이 어떻게 나이 들고 서로를 지켜주며 삶을 마무리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p.s – 믿는페미로서, 후회 없이 죽어갑시다, 살아갑시다,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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