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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것']20호

아무 생각 없으면 좋다

- 쏘네치카


 억지로 춤을 추다 보면 웃음이 피시식 터지고 까르르 웃게 되는 순간이 있다. 춤을 추는 것뿐만 아니라 아침에 몸을 일으키는 것과 그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는 것, 어딘가로 향하는 것 등을 억지로 하며 살아간다. 춤을 추다 웃음이 터지듯이, 살아가며 하는 모든 일이 수월하게 느껴지길 기대했다. 아무것도 쉽지 않았다.

날씨가 좋아서 울컥하는 때가 있다. 어젯밤에는 딱 춥지 않을 만큼만 시원하게 바람이 불었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새삼 감사하며 과연 내가 이 모든 것에 자격이 있는지 고민했다. 너무 많은 생각은 병적인 우울을 낳고, 병적인 우울은 또 너무너무 많은 생각을 낳는다.


 이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 안에는 내 생각을 마구 던져놓을 수도 있으며, 내가 아무 생각도 못 하도록 자극적이고 중독성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 한때는 이런 나 자신을 중독자로 정의하며 스마트폰을 멀리하려 했었지만, 이제는 그저 내 신체의 일부쯤으로 여기고 있다. 현실이 너무 피곤하고 버겁게 느껴질 때, 비현실을 즐기자. 쓸모와 자격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그저 허락된 것들을 감사히 즐겨보자.


 이를테면 네모로직, 왼쪽과 위쪽에 나열된 숫자들을 참고해서 규칙대로 네모를 채우면 그림이 된다. 현실에는 이렇게까지 간단한 일이 없다. 상식적인 선에서 계획을 갖고 삶의 그림을 그리려고 해도, 그 그림이 찢기지나 않으면 다행인 일이다. 내 삶은 매번 계획이 틀어지고 그림이 찢기며 길을 잃어왔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계속 뒤틀렸던 것 같다. 하지만 애초에 정답이랄 것도 없으니 바로잡을 수도 없는 뒤틀림이다. 그래서 나는 네모로직을 한다.


 요리중독이라는 게임도 있다. 가상의 고객들이 원하는 음식을 그대로 요리해서 장사한다. 코인을 모아서 요리 기구들을 업그레이드하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로운 분야의 음식점을 시작할 수 있다. 현실의 삶에는 애초에 내게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아오지 않으니 장사를 시작 할 수 없다. 게임 속에서는 몇 번의 플레이를 좌절해도 다시 30분을 기다려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의 좌절은 구질구질한 기억들과 크고 작은 빚을 남긴다. 몇 개의 관계들은 망가지고, 소화불량과 만성 피로가 익숙해진 후에 깨달음을 얻거나 절실함이라도 발휘해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요리중독이라는 게임 속에서는 다섯 개의 기회를 잃어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말고는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 현실의 삶이 내게 딱 그만큼만 너그러우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요리중독을 한다. 


 미국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도 좋다. 모든 캐릭터가 결코 완벽하지 않고, 서로 상처를 주지만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는 결말을 볼 수 있다. 하다못해 ‘해결되지 않은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전개라도. 또 그 캐릭터들의 세계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즐겁게 일상을 보내는지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내 일상의 사사로운 문제들이나 좋은 점들도 그렇게 귀여운 얼굴로 이야기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럼 나 자신이 말하는 장면을 캡처해서 내가 얼마나 찰떡같은 말을 했는지 자막을 넣고 짤로 만들어 프로필 사진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귀엽지 않아서 짤이 될 수 없다. 인간치고는 귀여운 편이라 생각하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만큼 작고 귀엽지 않다. 찰떡같은 대사도 딱히 없다. 그러나 못 가진 것을 욕망하는 마음을 고이 간직하여 계속 애니메이션을 볼 것이다.


‘현실도피‘란 말은, 내 현실에 대한 책임감을 져버리는 말 같다. 어쩌면 그게 사실일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책임져야 할 것과 해야 할 일과 약속된 일정과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삶의 좋은 면과 안 좋은 면 모두 과하게 느껴지는 지금, 비현실로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멀리 현실로부터 떨어져 몇 시간과 몇 날 며칠을 지냈더니 살 것 같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져 그냥저냥 살아볼 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믿는페미 웹진 '날것'은 매주 목요일 발행됩니다. 
이번 주는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의 특별판을 발행합니다. 
저희의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 부터는 '몸'을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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