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웹진 '날것']21호

단 하나의 우월감

-소네치카

마른 몸에 대한 욕망은 사방천지에서 밀려왔으니 딱 무엇을 집어 이것이 출처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그저 10살 때를 기억한다. 명절에만 집에 오는 삼촌이 내 다리를 가리켜 ‘저주받은 하체’라 표현했다. 내가 싫은 내색을 해도 소용없었다. 아빠의 폭력과 학업에 대한 좌절이 겹쳐 우울증에 허덕이던 18살 때를 기억한다. 학교도 자퇴하고서 집에만 있었던 그때,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아빠가 내게 살이 쪘다며 헬스라도 다니라고 말했다. 이 말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그즈음 칼로리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칼로리를 섭취한 만큼의 숫자를 더하고 소모한 만큼의 숫자를 빼는 방식으로 일기를 썼다. 하루 목표 칼로리는 1500 정도였는데, 샤워 같은 일상적인 움직임도 소모 칼로리로 계산했으니 그리 적게 먹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1년 이상 칼로리를 의식하며 살았더니 18살 때 58kg이었던 몸무게가 19살 때는 47kg까지 줄었다. 이즈음 또 술에 취한 아빠에게 삼촌이 한 말을 전해 들었는데, 바로 내 밥 굶기냐는 책망의 말이었다. 저주받은 하체라던가 살쪘으니 헬스 좀 다니라는 말을 뒤엎는 동시에 드디어 아빠를 가해자로 여기는 말이었다. 그전까지는 어떻게 아빠를 경찰에 신고 할 수 있냐는 물음이 아빠와 나 사이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가족들의 의견이었다. 19살 때의 나는 18살 때의 나만큼이나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살이 빠지니 걱정의 대상이 됐다. 이게 나를 얼마나 안심시켰는지 모른다. 

 칼로리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방법은 없다. 우리 몸은 덧셈과 뺄셈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몸무게가 지방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섭취하고 소모하는 칼로리의 양을 계산하는 것이나 매일 몸무게를 재는 것은 다이어트 압박을 더 해주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다이어트와 식이장애, 칼로리 이론 등에 대해 여러 전문적인 글들을 읽고서 숫자놀음은 그만둘 수 있었지만 마른 몸에 대한 욕망은 여전하다. 지금의 나는 소화기관이 예민하고, 끼니를 챙기지 않는 오랜 습관 때문에 밥을 굶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게 좋다. 내가 말랐다는 것은 내게 덕지덕지 붙은 열등감들을 감싸주는 단 하나의 우월감이다. 내 마른 몸을 이루는 것은 건강하지 않은 특성일지라도 우월하게 느껴진다. 이게 기괴한 줄은 알면서도 싫어하지 못한다. 내 마른 몸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뭘까. 칼로리 이론이 틀렸다는 것은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지만, 욕망은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설명만으로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애초에 사방천지에서 밀려왔으니, 그 어떤 몸도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가치관 역시 또 사방천지에서 몰려오길 기대한다.


이번 주부터 6주간 ‘몸’이라는 주제로 글을 발행합니다.

여섯 필진의 각기 다르지만 동시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몸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음 주에는 '희년'의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만나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