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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것']17호 


즐겁지 않음에 관한 이야기

-폴짝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자고 의견이 모였을 때, 나에게 주어진 글감에 마음이 설렜다. 지금까지 써왔던 웹진 주제들이 때로는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외부의 무언가가 아니라 ‘내 안의’ 이야기는 좀 더 편안하게 펼쳐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 하지만 웬걸. ‘즐거움’이라는 말에서 마음이 콱 막혀버렸다. 즐거움이라는 감각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즐거움이라는 말이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 나는 지금 즐겁지 않다. 즐겁지 않은 날들을 서성이고 있다. 


 과거의 기억은 조금씩 미화되고 왜곡되기 마련이지만 과거의 나는 꽤 즐거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에너지 넘쳤고, 무엇이든 시작할 마음의 힘이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내 스타일의 가수와 음악에 마음이 찌릿한 날들이 많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에너지 소비가 아니라 충전이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충동적이었고, 충동적으로 결정해도 일상과 삶에 큰 타격이 없을 정도로 자유로웠다. 아마도 내가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범위가 고작해야 학기마다 받는 성적표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랬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즐겁지 않았다. 휴학을 포함하여 6년 만의 졸업을 위해 해내야 하는 것들이 많았고, 졸업에 쫓기듯 1년을 살았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자려고 누워 ‘오늘 밤 이렇게 내 몸이 바닥에 흡수되듯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마치 사막에 발이 빠지면 스르륵 몸 전체가 모래에 파묻히는 것처럼 말이다. 차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는 없었지만, 현실을 초월한 어떤 현상이 일어나서 나의 존재가 흔적 없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날들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종종, 어떤 시기에는 자주 같은 생각을 한다. 그때부터 내 일상은 무너지고, 망가져 있는 것이 디폴트가 되었다. 나는 무너진 일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발버둥 치거나 또 때로는 무너진 일상을 가만히 둔 채 그 안에 머무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발버둥 치는 것도, 그 안에 머무르는 것도 괴로웠다. 


 이 과정에서 나를 즐겁게 했던 것들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부담이 되거나 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지푸라기가 되었다. 특히나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를 한 이후에는 부담의 범위가 더 넓어졌고,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지금의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 친구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질문과 농담을 웃어넘기기 어려운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그들은 사랑하는 채로 남겨두고 싶어서 그들과 거리를 두기로 했다. ‘내가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몇 년인데 이 정도의 신뢰가 없나?’ 싶다가도, 친구들을 만나야 하는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주춤하게 되더라. 반면 내가 지푸라기처럼 잡고 있는 것은 매일 아침 내리는 커피와 책, 각종 굿즈들이다. 커피는 내가 나를 위해 하는 몇 안 되는 나를 아끼는 행위라고 느껴져서이고, 책은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필요해서이다.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을 때만큼 내가 ‘쓸모 있게’ 느껴지는 순간은 드물다. 그렇기에 나에게 커피와 책은 ‘나로서의’ 생존을 위한 과정 혹은 도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굿즈. 나는 주로 에코백과 뱃지, 스티커, 유리잔들을 사들인다. 에코백은 일단 내 방에 있는 것만 20개가량이고, 뱃지도 비슷하게 있다. 스티커는 흩어져 있어서 그 숫자를 파악할 수 없지만 굿즈하면 빼놓지 않고 사니 이것도 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리잔은 비슷한 크기의 유리잔들만 7개가 있다. 곧 결제와 배송 예정인 것들과 책을 사며 받은 굿즈들을 포함하면 굿즈의 숫자는 더 늘어난다. 이미 집에 많아서 숫자가 늘어나도 큰 효용을 주지 못하거나 귀엽지만 쓸모없는 이 무용한 굿즈들이 내가 돈을 버는 가장 큰 이유이다.  


 커피와 책, 각종 굿즈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나는 여전히 우울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해본 적은 없다. 최근 들어 애인에게 ‘우울은 누구에게나 있다’라는 걸 피력하려고 이야기한 것이 유일하다. 우울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우울이라는 감정 자체가 낯설기도 했다. 우울은 내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의 우울은 ‘평생 나와 같이 가겠구나’라고 여기며 산다. 


  글을 여기까지 썼는데도 즐거움이라는 감각이 실재하지 않는 것 같아 사전에 검색해보니 '즐겁다'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즐겁다 [즐겁따]  중요도 별점 3개

[형용사]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쁘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5438100]



‘마음의 거슬림이 없이’라는 부분이 심하게 마음에 거슬리는 걸 보니 즐겁기는 글렀구나 싶다. 한편으로는 ‘아! 내가 즐겁지 않은 이유가 마음에 거슬리는 게 많아서구나’ 하고 안심하게 된다. 우울감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울한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 버거운 순간들이 있지만, 마음의 거슬림이 많은 나는 웬일인지 무척 자연스럽다. 즐겁지 않은 날들을 서성이는 나에게 ‘마음의 거슬림’은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즐거움의 반대말이 우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즐겁지 않고 우울한 날들을 보내며 딱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의 결들이 나에게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즐겁지 않다. 마음에 많은 거슬림을 가지고 즐겁지 않은 날들을 서성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즐겁지 않아도 괜찮다.


믿는페미 웹진 '날것'은 매주 목요일 발행됩니다. 이번 웹진은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필진들의 즐거움을 펼쳐내고자 합니다. 필진들의 즐거움이 이 글을 읽는 믿는페미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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