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밴드 소란을 좋아하고 있다. 애인과 이별 후에 충동적으로 갔던 연말 단독 콘서트 ‘CAKE’에서 소위 덕통사고를 당했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조명과 무대 효과를 만빵 활용하며 등장한 것, 무대에 설치된 화면을 활용해서 떼창을 유도하던 것, 옆 사람과 인사하고 손뼉을 마주치며 ‘북유럽 댄스’를 춘 것, 이 모든 것을 재미있게 설명하던 영배찡의 언변. 그리고 ‘고백직전’이라는 곡을 슬레이스벨 울리는 소리와 함께 시작하던 영배찡의 환한 미소. 이후에 ‘LIVE THEY’에 가서 사인회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고, 영배찡에게 사인을 받으며 이런 말을 했다.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공연 보러 왔다가 완전 괜찮아졌어요." 다정한 영배찡은 사인을 해주며 공연 보러 와줘서 고맙다고,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이별을 주제로 하는 싱글이 발매됐다. 발매 기념 생방송에서, 댓글로 현명한 이별 대처법에 대한 사연을 받기에 그 이야기를 또 했다. 영배찡은 이 분이 이별의 왕이라고 메노사마에게 내 덧글을 읽어 달라고 했다. "저는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충동적으로 공연 예매했던 것이 덕질의 시작이었어요." 영배찡은 "현명한 이별 대처법을 가진 분, 그분이 바로 소냐씨입니다!" 라고, “소냐님! 이별 자주하세요!”라고 메노사마가 말했다. 그렇게 두 멤버가 내 이름을 자꾸 불러주는 것이 좋아서 이 부분을 녹화해 SNS에 올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름이 불리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그 녹화 영상 볼 때 마다 내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한 번은 메노사마의 퇴근길에 동영상을 찍자고 부탁해서 코트 어디서 사셨냐고 묻는 영상을 찍었는데, 1분 남짓 안 되는 이 영상을 볼 때 마다, 심지어는 생각 할 때 마다 너무 좋고 부끄러워서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자랑하고 싶어서 이 영상을 지인에게 보여주자, 지인은 지금 내 표정이 더 재미있다며 그렇게까지 좋아하다니 놀랍다고 감탄했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소란의 공연을 보는 것에는 사실 내 수준에 조금 과분한 돈이 필요하다. 직장 없이 알바만 몇 개 할 적에는 더 그랬다. 3월에 하는 장기공연을 세 번 보러 간 것은, 가족들과 함께 살 때 였으니 그랬다고 치더라도 4월에 집을 나오고 알바를 몇 개 늘리고서도 페스티벌을 포함하여 여러 공연들을 보러 다녔다. 어떤 것은 입장료가 없는 공연이기도 했으나, 대체로 5만원에서 10만원을 넘어가는 것이 많았다. 모든 공연들이 소란만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며, 사실 소란만 나오는 단독 공연이라면 그만큼 더 준비된 것도 많기에 그 가격은 적으면 적었지 결코 많은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내 경제적인 수준에는 맞지 않았다. 그래도 그 때 공연 보는 것 조금만 줄이고 식사를 챙기라 하면 그 말이 그렇게 화가 나고 서러웠다.


 탈가정 직후 나는 휴대폰 소액결제로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먹거나 일하는 카페의 음료를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가끔 무언가를 사먹더라도 편의점의 삼각 김밥이나 핫 바 같은 것을 한두개 사먹을 뿐이었다. 초콜릿바를 대량으로 사다가 배가 고플 적마다 그것만 먹기도 했다. 막상 배고플 때는 맛있게 먹었지만, 한동안은 초콜릿바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렇게 살다가 교회에 가거나 목사님을 만나면 식사를 얻어먹을 수 있었지만, 내 소화기관은 이미 끼니를 소화시키는 법을 잊은 듯이 1인분 양의 음식을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제는 직장을 구해서 조금 안정적인 수준의 수익이 생겼으니 다시 1인분의 식사를 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 그래도 그 때는, 사람들이 내 끼니 걱정을 했다. 당장 차비가 없어 돈을 빌리는 일, 사고 싶은 것을 못 사는 일, 그냥 살아가는 그 자체가 지긋지긋한 와중 내 거의 유일한 즐거움인 공연 보는 취미를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는 못마땅하고 이해가 안됐던 모양이다. 주로 교회라는 공간에서 그런 말을 들었던 것은, 내 삶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 영에 물든 불쌍한 어린양’으로 읽혔기 때문이었을까. “건강은 어릴 때 잘 챙겨야해, 지금 상황에서는 밥을 먹으려면 공연을 조금 덜 보는 게 좋겠다.”고 말하기에 공연을 보는 것은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설명하며 공연장에 하나님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니 그럼 그 하나님 만나러 예배드리러 오라고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내가 생각해도 나 방금 말 진짜 잘했어.”라고 말하던 냄져. 돈에 대한 모든 걱정이 지긋지긋하다고, 식사비용에 대해 생각해야하는 것 너무 싫다고 말하는 내게 “소란 공연 몇 개만 덜 보면 생기는 돈이잖아. 뭘 그리 걱정해.”라고 쉽게 말하던 냄져. 그런데 내가 가장 현명하길 기대했던 우리 담임 목사님은 내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교회사람 몇 명이서 냉면을 먹고, 과체중 남자아이에게는 “며칠 동안 고향 내려가서 밥 먹을 때 구박 많이 받았으니 오늘은 더 먹어. 냉면 많으니까 한 그릇 더 먹어도 돼.” 그렇게 몇 번을 말하고서는 반도 채 먹지 못한 내가 힘이 없어 소파에 누워있자 슥 보고는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살찌는데.”라고 장난스레 말했었다. 


(소네치카는 끼니를 챙기는 게 즐거움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 싫다.)


 나는 정상체중이다. 별다른 운동이나 식이요법 없이 적당한 지방량과 근육량을 유지하고 있다. 소란 공연을 무리해서라도 보러 다닌 덕분에 적당히 긍정적인 마음가짐 역시 유지하고 있다. 나는 멀쩡하다. 이런 내게 공연을 덜 보는 편이 낫다든지, 밥을 더 먹는 편이 좋겠다든지 조언은 필요 없다. 탈가정 직후 같은 교회 공동체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공연을 덜 봐라, 밥을 더 먹어라 말을 하는 동시에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살찐다는 말을 하며 이쪽으로도 저 쪽으로도 못 가게 나를 괴롭히는데, 나는 오로지 소란 공연을 보고 문화생활을 할 때만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이미 스스로의 방향을 찾은 소네치카를 피곤하게 하는 충고들)


 나를 괴롭게 하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는다. 목사님은 설교 중에도 나를 괴롭게 하는 발언들을 참 많이도 했다. 그게 그의 의도는 아니라고 믿었으므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내가 사랑하는 목사님이 앞에 서는 예배가 나의 즐거움이 되길 기대했다. 목사님은 내게 ‘목사로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하기에 나는 페미니스트일 수 없음’과 내가 여혐 발언이라 지적한 것들에 대한 핑계, “여자들이 단체로 군대를 가겠다고 시위를 한다면 그렇게 될 거야.”라는 뜬금없는 말들로 또 나를 괴롭혔다. 지금은 내가 어떻게 그런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때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때 예배는 정말로 나의 즐거움이었다. 아니, 즐거움이었나?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나를 감동케 했던 그 어떤 것도, 한참을 만나지 않다보면 왜 좋아했는지 잊혀진다. 좋아하는 방법도 잊혀진다. 내가 즐거움을 추구해온 방식은, 불행이 곧 내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출발했다. 내가 나의 즐거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 때,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는가. 인생은 내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지금 돌이켜보면 그 일들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나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로부터 교훈과 열매를 찾으려 했다. 내 삶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여러 편의 동화라고 생각했다. 이 사건에서는 이런 발전을, 저 사건에서는 저런 발전을 해야 했다. 지나온 사건들과 다짐했던 것들을 보려고 개인적인 기록들을 훑어보니 나는 우울하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꾸준히 재미있는 무엇들을 만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행복해지는 데에 달란트가 있는 것 같다. 나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들을 끊어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 사사로운 불행과 행복에 대해 말하며 더 큰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일.


믿는페미 웹진 '날것'은 매주 목요일 발행됩니다. 이번 웹진은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필진들의 즐거움을 펼쳐내고자 합니다. 필진들의 즐거움이 이 글을 읽는 믿는페미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