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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것'] 16호 


섹스가 즐겁지 못한 이유

-오스칼네 고양네


나를 즐겁게 하는 것. 

우등 고속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내 팔을 베고 자는 모습을 보는 일, 구글 지도로 가고 싶은 곳을 염탐하는 일, 파트너와의 아침 산책, 파트너와의 섹스, 카페에 앉아 수첩에 메모를 끄적이는일, 보드게임, 친구가 집에 놀러오는 것, 토론, 설거지를 해서 싱크대가 정리되는 모습을 보는 것, 한겨울의 온천, 책의 첫 10페이지, 아빠와의 수다, 낯선 곳에서 길 찾아가기 등. 즐겁고 재미난 일들 참 많지만 이 중 섹스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볼까. 


섹스가 재밌다. 그런데 누구나 섹스를 재미있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언젠가 깨닫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곳곳에서 들어본 “남자가 여자보다 섹스에 관심이 많다.”는 문장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섹스에 흥미 없는 남자가 예상 외로 많고, 관심은 있지만 딱히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남자들도 종종 발견하면서, ‘남자는- 여자는- 이렇고 저렇다’는 둥의 어설픈 일반화의 오류가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 이런 거짓부렁에 속아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으로 보냈던가. 다른 여자들은 안 그런데 나만 유별나게 좋아하는 건지, 내가 매력이 없어서 상대방이 심드렁한 건지, 이게 맞는 건지 저게 맞는 건지, 내가 좋아하면 되는 타이밍인지 아닌지 까지도 난 고민했단 말이다! 그저 사람마다 취향이 있듯 섹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고 진작 알았으면 편했을 것을, 여자와 남자라는 성별의 틀에 나와 파트너의 욕구를 맞추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이었던가. 섹스의 선호도를 여성과 남성의 성별 차이로 구분 짓는 사람들은 섹스 경험이 미천한 것이 분명할 터,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개인의 취향에는 성별이 관여할 수 없다. 


내 주변에는 음식을 먹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그 즐거움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소위 ‘맛집’ 탐방을 하기도 하고, 직접 요리를 배우기도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먹는 행위를 귀찮아하는 이도 있고, 습관적으로 음식을 섭취하긴 하지만 그 이상의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이도 있다. 취향이란 그런 것이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행위인 ‘음식 섭취’에 대한 태도도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난다. 섹스라고 뭐 다를까. ‘난 섹스를 좋아한다. 싫어한다. 그냥 그렇다. 이런 날에는 이런 섹스를 하고 싶다. 더 재밌는 섹스를 위해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난 그냥 섹스가 귀찮다.’ 등등. 그냥 자기 취향대로 섹스에 대해 심드렁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섹스, 그게 뭐라고 개인의 취향과 욕구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고 혹은 강요하고 또 금기시하는 것인가. 


세상은 여전하다.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터부시된다. 남성들에게는 ‘음지에서 성을 소비하라’고 요구하고 여성들에게는 ‘그 입을 다물라’고 협박한다.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 작가가 연달아 강연 보이콧을 당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섹스를 함부로 입에 담은 여성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사회의 협박이다. 하긴,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기치를 내걸고 나온 한 후보의 벽보 사진을 보고 “시건방지다”고 하며 그 눈빛조차도 문제 삼는 사회이니 어련할까. 여성들이 자신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여전히 많은 검열과 암묵적 협박을 뚫고 나와야만 가능한 사회인 것이다. 


사회가 그렇다면 교회는 더 가관이다. 교회는 오래도록 성(性)을 터부시하는 데에 앞장서왔다. 종교적 수행을 위해 하나의 도구로써 사용되어야 했던 ‘금욕’이 타인을 도덕적으로 정죄하는 수단이 되었다. 개인이 즐거움을 맛보는 것은 타락한 세상을 따르는 것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이 기세를 잡았고, ‘성욕’은 인간의 ‘악한 본성’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교회 안에 이어져 내려온 ‘성엄숙주의’는 특별히 여성들을 통제하기에 좋은 수단이었다.

내가 위에 쓴 글을 교회에 가서 자유로이 말할 수 있을까. 개인의 즐거움과 욕망을, 섹스를, 그것도 여자가? 교회 안에서 말하는 것은 광장에서 소리치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사회보다 훨씬 더 큰 벽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입을 틀어막는 것은 교회를 이대로 유지하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내가 믿고 따르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에는 큰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믿는 페미들! 나를,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소리치자. 결국 그 즐거움이 우리가 걸어갈 길과 세상을 바꿔나갈 원동력이 될 것이니. 


믿는페미 웹진 '날것'은 매주 목요일 발행됩니다. 이번 웹진은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필진들의 즐거움을 펼쳐내고자 합니다. 필진들의 즐거움이 이 글을 읽는 믿는페미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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