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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믿는페미'가 즐거운 거 같지 않아" - 오스칼네 고양이



'믿는페미'를 외부에 공개한 지 이제 한 달쯤 되었나? 얼마 전 나와 함께 지내고 있는 파트너가 내게 말했다.

 

  - 당신은 '믿는페미' 하면서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 않아. 


맞아.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거다. 사실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가슴 벅차고 즐거운 일이며 주변에 떠벌리며 다니고 싶은데, 그러지 않았다. 


  - 정확히 봤네. 내가 그렇게 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어. 첫 번째는 '너무 들뜨면 안 된다'는 나의 자기검열. 이 몹쓸 습관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일에 시큰둥하게 반응하잖아. 


행복한 일을 만나면 그것이 금방 사라질 거 같아서, 나는 그런 일을 만나면 '별거 아닌' 듯 반응하곤 했다. 그래야 오래 지속될 거 같고, 혹여 사라지더라도 상처를 덜 받지 않을까 싶어서. 


  - 두 번째 이유가 중요한데, 내가 신나게 '믿는페미'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비웃음을 섞어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 반응을 보면 화가 나니까, 아예 말을 안 하게 되더라고. 내 주변 사람 중에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면 기껍게 반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랬다. 내가 새롭게 시작한 '내 운동'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응, 그렇구나"라는 말로 리액션을 끝내 버렸고, 어떤 이들은 "요즘 페미니즘이 붐이라더니.."라며 뒷말을 흐렸다. '젊은 애라 유행에 휩쓸리는군.'이라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떤 이들은 "그래, 잘해봐"라고 했지만 이 운동을 통해 내가 무얼 말하고 싶고 무얼 바꾸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난 아직 페미니즘에는 관심이 없어서...'라고 말했는데, 여성을 앞에 두고 '여성 인권에 관심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것인지 알고 그 말을 내뱉은 걸까? 이들의 반응은 각각 사뭇 달랐지만, 그들이 '페미니즘'이라는 것에 대한 얄팍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그 프리즘 안에서 내 운동을, 나를 재단해버린 것은 확실했다. 

대화에서 내가 느낀 것은? 수치심. 그들에게서 읽힌 메시지를 거칠게 표현하면 이런 거다. "페미니즘 중요하긴 한데, 여기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냐고? 너는 우리랑 말이 잘 통하는 여자애였잖아!" 


머리가 복잡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저 대화를 나눈 이들은 나와 상당히 가까운 사람들이고, 오랜 시간 함께 일을, 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이다. 헌데 '페미니즘'을 내 삶의 주요 방식으로 택하겠다고 선언한 순간, 이들이 익숙한 프레임으로 날 덧씌우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존중받고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내가 여성인데, 여성운동을 한다고 하니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로 인식되어 버리는구나. 내가 지난 몇 년간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문화와 발언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그 모든 것들은 대체 무엇이었나. 그냥 '흔한 여성들의 예민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었나? 난 이 조직 혹은 사회에서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었던걸까. 


내가 자리 잡은 삶의 공간의 특성상, 직장동료, 학교 동기, 동문 등의 90퍼센트가 남성이며 목사라는 사실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남성/목회자'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발을 맞추고 합을 맞추며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민을 나누고 공부를 함께했던 사람들, 의지가 되고 도움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것에 걸려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질 때 나는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고민스러웠다. 페미니즘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나를 받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지반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역시 여기에는 소망이 없는 걸까? 그 어느 곳보다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사회임이 분명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들도 분명 여기에 있는데, 모두 남겨두고 도망쳐야 하나?


언젠가 내가 교회와 교단에서 겪은 부당한 차별적 사건에 대해 성토했을 때, 내 얘기를 듣던 누군가가 말했다. 


  - 근데 왜 거기 꼭 남아있으려고 해요? 다른 교단 가요. 그리고 목사가 꼭 안 돼도 되잖아요. 


헌데 그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들 못지않게 내가 하는 일과, 내가 경험한 시간과, 내가 꿈꾸는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남아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남아있더라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기에,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문득 창세기 구절이 떠올랐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12:1) 이 구절에서 적잖은 위로를 받는다. 이 구절은 내게 도망치라는 말로 읽히지 않고, 익숙한 것에서 의도치 않게 결별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로 읽혔다. 나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고 나를 '예민하고 드센 여자애'로 다시 라벨링하고 나에게서 거리를 두려는 사람들이 많아질지라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신호로 읽혔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나와 함께 삶을 엮어준 이들에게 꼭 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믿는페미인 이유이다. 내 삶에서 도망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거대한 골리앗 같은 벽 앞에서 소리칠 생각을 하니 여전히 마음이 떨리지만, 이제부터는 나 혼자가 아니니까. 그래,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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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네고양이

오스칼네 고양이는 오스칼 집에 살면서 해가 지면 사람이 되어 페미니즘 운동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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