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순절 새벽기도를 마친 어머니가 인천에서 차를 달려 수원으로 오신다고 한다. 지난 겨울 보내주신 김장이 간이 안 맞더라는 말을 기억했다가, 맛이 좋은 김치가 생겼다며 가지고 오신다는 것이다. 


- 더 익으면 맛이 달라지니까. 지금이 딱 맛있단 말이야.


자주 꺼내지 않아 얼어버린 김장통을 꺼내고 새 김치를 넣고는 거저 주고도 미안했던 지난 김치를 보자기에 다시 싼다. 


- 익으니까 맛이 있던데. 이건 엄마가 가져가서 먹을게. 


서울로 나간다는 나를 굳이 태워주겠다고 차 시동을 거는 엄마. 


- 지하철 타고 가도 되는데..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는 풀썩 조수석에 앉는다. 


- 이게 자꾸 떨어져. 겨울에 얼었다 녹고 하더니.


차 앞쪽에 핸드폰을 끼울 수 있게 붙여놓은 집게모양 플라스틱이 말썽이다. 꾸욱꾹 눌러 붙이곤 핸드폰을 끼우고 네비게이션을 켰다. 


어라, 왼쪽 차선을 탔어야 했는데 잘못 왔네. 아이고 어째.


엄마는 차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고 옆 차 눈치를 봐가며 비상등을 켠다. 거북이처럼 가는 길에 차가 끼어드니 싫었는지 뒷차가 빵! 하자 엄마는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어 연신 숙였다 올렸다한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창문 열어서 얼굴 보여주지 말아요, 엄마. 여자 운전자라고 욕하거나 해코지 당하면 어쩌려고. 하는 말이 목까지 올랐다가 내려간다. 


이제는 살짝 긴장이 감도는 시간. 엄마와 나는 제법 죽이 잘맞는 친구였지만 언젠가부터 대화가 자주 싸움으로 번졌다. 19살 대학 입학원서를 쓰던 때, 난데 없이 신학교를 가겠다고 하자 부모님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안 어른들이 모여 회의까지 했다는데 내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덧불이는 말씀이 이랬다. 


- 좋은 목사님과 결혼해 사모님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아니 엄마 그거 아닌데, 나 그래서가 아닌데, 잠깐만. 어쨌건 대학교에 갔고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통금시간 전쟁을 거쳐 “시집가라” 스코어에 왔을 때 우리 모녀는 상대가 이렇게 집요하고 고집이 쎘던가를 날마다 곱씹어야 했다. 


엄마가 중매를 하다보면 교회에 능력 좋고 똑똑한 여자들이 많단 말이야. 그래서 신부감 찾는 남자들에게 소개해주면 싫다고 한다고. 하나같이 어리고 젊은 여자를 찾더라, 아기 낳아야 하니까. 공부하고 경력 쌓느라 나이 들어버리면 결혼을 못해요. 너 딱 보면 성격이 드세서 조금만 더 나이들면 결혼 못할까봐 엄마가 걱정된다 정말로. 


하! 나 참 기가 막혀서. 아니 자기 나이는 생각 안하고 왜 여자만 어린 사람으로 찾는대? 그리고 나 결혼 안해도 상관 없어요. 요즘엔 여자들 결혼 안하고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아. 옛날에야 나이 차면 결혼해야 하는 줄 알고 시집가서 고생고생 했지만 이젠 남편 없어도 내가 돈 벌어 잘 살 수 있다고. 솔직히 결혼하면 남자만 이익이지 여자는 손해가 막심하단 말이야. 


아니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가정을 일구고 예쁜 아가도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악! 그게 아니라고! 아니 뭐 결혼 할 수 있지만 안 하고 살아도 괜찮다고. 이러나 저러나 잘 살 수 있어! 


지금이나 그렇지 더 나이 들어봐라, 혼자 외롭고… 


으악악. 그만해! 


갈등이 극에 달하고 급기야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며 비혼 선언을 하기에 이르지만 어머니의 저주가 통했는지 나는 곧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한 사람은- 언제나 안 좋은 예감은 틀린적이 없듯 목사다. 


에헤이, 또 떨어지네, 이거. 다시 사야하는 거 아니야? 네비가 자꾸 이렇게 떨어지면 운전하기 위험해서 어쩐대. 


헤헤, 조심해서 해야지 뭐. 그나저나 김사모, 내 말은 


김사모 아니고 김딸이라니까요 어머니. 딸! 그냥 딸! 


그래 딸. 너는 결혼 했으니까 남편 집안 사람인거야. 여기가 이제 내 집안이다 생각하고, 너무 니 일 내 일 따지며 나누지 말고 좀 덮어주고 참아주고…


나를 사랑하고 보살피며 언제나 응원한 사람, 신앙의 선배가 되고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은 엄마였지만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사회질서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고스란히 내게 물려준 사람도 엄마였다. 교육의 가치가 당신보다는 다른 남자 형제들에게 먼저 돌아갔던, 결혼해서 시부모를 모시며 첫 아이가 아들이 아니면 미움 받을텐데 마음 졸여야 했던 엄마는. 다만 그 시절의 고통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위로받으며 견뎌내었다. 삶이 나를 괴롭게 했지만 고통 속에서도 내 편이 되시는 하나님이 엄마의 유일하고 든든한 힘이었으니까. 


엄마. 부부끼리 덮어주고 희생할 수 있지만 늘 여자에게 희생해라 참아줘라 하잖아. 난 말이야, 여자들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거야. 결혼한 다음에 여자가 남자 집안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거야. 결혼한 사람이 목사라고 해서 내 이름이 아니라 사모로 불리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거야. 그게 여성운동이야. 나는 신앙인이니까 내 자리에서, 여기서부터 할거야. 친구들이랑 같이 이제 막 시작했어.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거의 처음으로,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엄마는 전에 보지 못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띄우며 앞을 바라보고 운전을 하셨다.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나는 믿는페미다. 


- 달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