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에도 페미니스트였을까 정리되지 않은 방을 지적하며 굳이 여자아이 방이라고 짚는 것이 싫었다. 여성의 전용 색 같았던 분홍색을 일부러 미워했다. 중학생 때 생리대를 들고 화장실에 가는 내게 그건 부끄러운 거라고 굳이 알려주는 친구가 있었다. 그래도 굳이 여자중학교에서 생리대를 감추고 다니지 않았다. 남자친구의 고백을 한 번에 받아줬었다는 여자아이가 몇 번 튕겼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있기에 주체적으로 만나는게 멋진 거라며 끼어들었다. 브레지어를 하지 않는 것이 티날 때가 있다고 친구가 알려주기에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대답했다. 남자들중에는 유두가 도드라진 채로 편하게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데에 비해 여자들은 너무 철저하게 가리지 않느냐고, 남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기는 힘드니 나만이라도 균형을 맞추..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까. 누군가가 “메갈리아가 페미니스트야?”라고 묻는다면, 아무 답도 하지 못하는 나는 과연 스스로르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의 길을 가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여성 해방이 곧 남성 해방이고 그것이 곧 인간 해방이라고 믿기 때문에. 언제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페미니즘이 나를 대변하는 스피커가 되었을 때, 내 삶에서 억눌렸던 삶의 파편을 발견하게 됐다. 오빠 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 오빠는 자기 친구에게 따지는 대신 나를 다그쳤다. 다른 사람이 몸을 만지는데 왜 거절하지 못하느냐고 했다. 중학교를 다닐 쯤, 반장 선거에 뽑힌 나를 담임은 집이 멀다는 이유 만으로 남학생을 반장으로 세웠다. 시간이 지나 대학..
믿는페미, 나 여기에 있어요! - 달밤 “우리, 평화의 씨를 뿌리자.”“씨를 뿌린다고? 그거 성교육이에요, 형?” “와하하하!!”일동 웃음. 대화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나만 분위기에 섞이지 못한 채 넋나간 사람처럼 앉아있다. 이게 뭐지. 아무도 나무라는 사람 없이 다음 주제로 이야기 꽃이 핀다. 괜찮은 걸까..? 아니, 내가 괜찮지 않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빨리 뛴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두리번거리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 동료와 눈이 마주친다. 못마땅한 눈빛, 우리는 같은 걸 느꼈다. “저, 하고싶은 말이 있어요. 아까 나온 씨뿌리기가 성교육이냐는 발언, 불쾌합니다. 우리 모임에서 이런 성적인 농담은 나오지 않으면 좋겠어요.”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진행자도 나도,..
* 달밤이 페이스북 개인 계정에 올린 글을, 믿는페미 기획단 3인이 의논하여 웹진에 옮겨 싣습니다. 좋은 이야기 나눔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기독교 신앙 그대로 가지면서 페미니즘 가능하냐"는 말은 맞는 말 같지만 실은 이상한 말이다. 기독교가 가부장제와 성별 이원론, 다 꺼지고 남자 최고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여성이 그 신앙을 거부하며 '기독교 밖'으로 뛰쳐나가봤자, 어디로 간단 말인가? 어디로? 교회 밖에 안전지대가 어디 있으며 '기독교 밖'은 과연 안전한가. 성차별 없는 종교가 있나. '종교 밖'은 어떤가. 안전한가. 종교를 말하지 않는 사회는. '합리의 사회'에는 여성이 설 자리가 있는가. 학대당하는 여인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탈출해서 도달할 어머니의 땅, 초록이 숨쉬는 평화의 땅이 지구상..
"넌 '믿는페미'가 즐거운 거 같지 않아" - 오스칼네 고양이 '믿는페미'를 외부에 공개한 지 이제 한 달쯤 되었나? 얼마 전 나와 함께 지내고 있는 파트너가 내게 말했다. - 당신은 '믿는페미' 하면서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 않아. 맞아.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거다. 사실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가슴 벅차고 즐거운 일이며 주변에 떠벌리며 다니고 싶은데, 그러지 않았다. - 정확히 봤네. 내가 그렇게 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어. 첫 번째는 '너무 들뜨면 안 된다'는 나의 자기검열. 이 몹쓸 습관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일에 시큰둥하게 반응하잖아. 행복한 일을 만나면 그것이 금방 사라질 거 같아서, 나는 그런 일을 만나면 '별거 아닌' 듯 반응하곤 했다. 그래야 오래 지속될 거 같고, 혹여 사라지더라도..
내가 믿는페미인 이유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호명하게 된 건. 별 수 없이 남들은 지루할 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정확하게는 지지리 가난하고 고리타분한 사고에 갇힌 순진한 모부의 집에서 태어났다. 가난하고 멍청하고 지저분한 여자 아이였던 나는 실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 사회에서 딸은 '여자'로 길러지기 때문에 돌봄의 부재가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였으리라 싶다. 가난하더도 가난이 티나지 않아야 했는데, 나는 학습부진아로 '열등반'으로 분류되는데다 생선 비릿내 나는 더러운 아이여서 티가 안 날 수가 없었던 게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가 없었고, 그래서 성인이 된지도 한참인데 여전히 또래들과 지내는 게 익숙하지가 않다. 따돌림은 내 인생의 꼬리표가 되어 ..
사순절 새벽기도를 마친 어머니가 인천에서 차를 달려 수원으로 오신다고 한다. 지난 겨울 보내주신 김장이 간이 안 맞더라는 말을 기억했다가, 맛이 좋은 김치가 생겼다며 가지고 오신다는 것이다. - 더 익으면 맛이 달라지니까. 지금이 딱 맛있단 말이야. 자주 꺼내지 않아 얼어버린 김장통을 꺼내고 새 김치를 넣고는 거저 주고도 미안했던 지난 김치를 보자기에 다시 싼다. - 익으니까 맛이 있던데. 이건 엄마가 가져가서 먹을게. 서울로 나간다는 나를 굳이 태워주겠다고 차 시동을 거는 엄마. - 지하철 타고 가도 되는데..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는 풀썩 조수석에 앉는다. - 이게 자꾸 떨어져. 겨울에 얼었다 녹고 하더니. 차 앞쪽에 핸드폰을 끼울 수 있게 붙여놓은 집게모양 플라스틱이 말썽이다. 꾸욱꾹 눌러..
- 페미니스트
- 교회
- 달밤
- 여성주의
- 여성주의예배
- 믿는페미팟캐스트
- 날것
- 여성
- 교회내성폭력
- 신앙
- 기독교
- 강남역
- transrightsarehumanrights
- 차별금지법
- 성서한국
- 문대식목사
- 교회여성
- 여성혐오
- 여성혐오범죄
- 예수
- 짓는예배
- 믿는페미
- 기독교페미
- 하나님
- 미니웹진
- 문대식
- 페미니즘
- 교회를부탁해
- 목사
-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