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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폭적인 사랑의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며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예수는 삶을 통해, 그가 겪은 수난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상을 엎으시고,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차단한 불의한 권력에 분노하셨습니다. 고아와 과부, 사회에서 천대받는 여인들과 함께 하시며, 병자를 고치고 슬픈이를 위로하셨습니다. 약자를 위협하는 율법과 편견과 차별이, 이상 이들의 삶을 박살내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우리 존재 모두가, 조건 없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귀한 존재임을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누군가 자기 삶의 존귀함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다면, 그들을 찾아 사회와 연결하고, 서로 보살피고 함께 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남과 나를 구분짓고, 빼앗으며, 죽여야만 살아남는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 말고 오직 하늘의 법을 의지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도록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가 거스른 것은 사망의 질서, 남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제국의 질서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도망치지 않고 제국의 손에 고난 받습니다. 사랑을 외치는 자를 용납하지 않는 거대한 증오의 질서가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난을 당하고, 피를 흘리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의 편에 있습니까. 

예수가 목숨을 던져 지키고자 했던, 그와 상에서 먹고 마시던 이들이 아직도 핍박 속에서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혐오와 정죄와 무관심 속에서 스러져 가고 있습니다. 예수는 누구든 조건 없이 사랑했습니다. 그가 분노한 이들은 율법을 어긴 자들이 아니라, 율법을 이용해 약자들을 정죄하는 권력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존귀함 그대로, 다른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군가의 성별 정체성이, 성적 지향이, 신체와 정신의 장애가, 나이와 인종과 가난이, 어떤 조건이 삶을 일그러뜨리는 이유가 되지 않도록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짓밟는 행실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사망의 법과 싸운 예수의 고난이, 그리고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너무나 많은 생명이 바스라지고 있습니다.

작가 이은용 ,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김기홍 , 육군 하사 변희수 모두 트랜스젠더인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는 이유로 거대한 혐오와 맞부딪혀야 했습니다. 혁명에는 피가 필요하다지만, 우리가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째서 이상의 피를 흘려야 합니까? 흘려야 피는 예수께서 이미 흘리셨습니다. 필요한 수난은 예수께서 이미 당하고 죽으셨습니다. 예수가 당한 죽음이 타인을 정죄하고 절망으로 내모는 우리의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아직도 채찍처럼 손에 쥐고 있는 사망의 법이 아닙니까? 계속해서 누군가가 차별 속에 죽어간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고백하는 예수의 구주되심이,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죽었다 부활하셨다는 선포가, 대체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께 호소합니다. 

작금의 죽음에 우리는 책임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혐오와 저주, 성소수자를 향한 편견 모두가 이들을 절망에 이르게 힘입니다. 우리는 통회하고, 방향을 돌이켜, 누구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 때문에 차별 받고 공격 받지 않도록 지켜내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몸을 던져 사랑하고 두려움에 맞서야 합니다. 차별금지법 뿐만 아니라, 전폭적인 사랑의 법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의 피로 거듭난 자로서 해야할 일이며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진실한 마음을 담아, 

2021.3.7 사순절 3주에

크리스천 페미니즘 운동 믿는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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