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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날것'] 44호

번의 장례식
오스칼네고양이


얼마 하루 만에 차례나 지인의 상이 났다. 아침에 서울의 동쪽 편에 있는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저녁에는 서울의 서쪽 편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날은 오가는 길에 괜스레죽음이라는 뭘까, 장례라는 뭘까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차례 모친상이어서인지여자의 삶이란 무엇일까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다가 장례식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여성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곱씹고, 여전히 여성에게 불합리한 장례식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성에게 불합리한 문화는 빈소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한다. 고인의 가족 이름이 나열되어 있을 , 딸의 이름은 아들의 이름 뒤에 위치하는 것일까. 태어난 순서에 상관없이 무조건 아들의 이름이 먼저 위치하는 것을 때마다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것은상주자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보통 상주는 맏아들이 맡는다. 맏아들의 부재시에는 맏손주가 맡는다. 그게 예법이라 한다. 기본적으로 딸은 상주가 없는 것이다. 남자 형제가 없는 입장에서 가장 이해가 되는 것은 고인에게 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을 때는 딸의 맏사위가 상주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모부의 장례식을 상상해보곤 하는데, 내가 장례식의 상주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진짜 자식 아닌 같아서. 

남자가 상주가 되면 아내, 혹은 가족 연장자 여성은안주인 역할을 맡아야 했다고 한다. 장례 내내 오고가는 손님맞이, 음식 차림과 같은 노동을 맡은 것이다. 지금이야 그러한 일들이 장례식장과 상조회에서 도맡아 하고 있다지만, 일손이 모자랄 바삐 움직이며 음식상을 내는 유족은 모두 여성이다. 그뿐인가. 애초에 상조회에서 나와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는 노동자들도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상한 풍경인데,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여성 유족이 입는 상복이한복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점도 이상한 지점이다. 남성은 양복, 여성은 치마저고리로 이루어진 한복을 입는 것은 전통도 뭣도 아닐 텐데, 그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이뤄지고 있다. 글쎄, 여성에게 불편함을 강요하는 것도 사회의 뿌리 깊은 전통이라면 전통일까.

시대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장례문화도 많이 변화했지만 이해할 없는 요소들은 여전히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가. 


결혼식과 장례식에는 사회의 문화적 특성이 고스란히 들어있는데, 특별히가족이라는 문화를 유지재생산하는 보수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결혼식만 봐도 그렇다. 가부장제 속에서 가족의 역할, 가족 시스템 아래에서 여성과 남성이 부여받는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는 결혼식이라는 일종의 통해 보게 된다.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과 남성 모두 고통받지만,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은 얼마나 공고한가. 결혼식은 그것을 보여주는 거대한 상징이다. 신부의 얼굴을 미리 공개하지 않기 위하여대기실 만들어 놓는 , 아버지의 손을 잡고 소위버진로드 걸어 입장하는 등등. 사회에서 결혼이란 제도가 여성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참으로 디테일한 상징을 통해 보게 된다. 


불편함을 느낀 이들이 주변의 고까운 시선을 감내해가며 저항한 결과 결혼식 문화는 많이 바뀌어왔다. 그런데 장례식은 상황이 다르다. 장례라는 시공간의 특성 때문인지, 그곳에서 절차적 혹은 문화적 관습의 문제를 발견하여 지적한다거나 남들과 다르게 예식을 진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례는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가오는 경우가 많고, 미리 준비하든 그렇지 않든고인의 우선시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장례식은 결혼식에 보다 변화가 더디다.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문화에 깃든 상징 문화는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거대한 때문에 논의의 장으로 이끌고 나오기가 쉽지 않은 같다. 그러나 논의가 시작되지 않으면 상징은 우리 속에 계속 남아 차별을 공고히 하는 은근한 기제로 작용할 것이다. 

장례식이라는 공간. 고인을 애도하고 남아있는 자들을 위로하고 가족과 지인들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기 위한 공간. 그런데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 어떤 이의 원치 않은 노동을 요구하고 차별을 가한다면 그것이 과연 장례의 본뜻에 맞는 일인가. 결코 그렇지 않기에 우리는 더욱 세심하게 장례식을 준비해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몸을 입고 땅을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신 분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 생각한다.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많은 여성의 삶을 생애 전체로 겪어내신 분께 자리를 빌어 다시금 존경과 애도를 표한다.


억압과 차별 없는 나라에서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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