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날것'

[웹진 '날것'] 30호 서비스 테이블에 비춘 무지개

믿는페미 2018. 9. 20. 18:46

[웹진 '날것'] 30호



비스 테이블에 비춘 무지개

-소네치카


 알바랑 직원이랑 뭐가 달라요?

 소네치카의 직업은 바리스타, 매장직, 서비스직 등으로 줄여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늘 “카페에서 일해요.”라고 말한다. 커피와 서비스직 그 사이의 어딘가에 그 직업의 전문성이 있으며, 매장직이라고 말하기엔 카페라는 공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네치카의 소개를 듣고 “카페 알바 하시는구나.”라고 말한다. 소네치카는 알바생이 아니다. 그래서 “직원이에요.”라고 다시 말한다. “아 직원이시구나.”하고 넘어가면 너무 완벽한 상황이다. 사람들은 가끔, 사실은 자주 “알바랑 직원이랑 뭐가 달라요?”라고 묻는다. 소네치카는 그 카페의 모든 직원을 상대로 진행되는 교육과 진급 시험, 교대로 오픈 마감 업무를 책임지고 점장의 업무를 일정 부분 대신하는 것, 매장의 특이사항을 경우에 따라 전화 혹은 메일로 보고하는 것, 정해진 요일 정해진 시간에 유제품을 발주하는 것, 베이커리 판매량과 재고를 확인하고 발주하는 것, 또 경력에 따라 신입 직원 교육, 컴플레인 응대, 절차에 따라 점장이 될 수 있는 것 등을 생각했다. 소네치카의 생각이 계속되는 동안 같은 질문도 계속된다. 소네치카의 생각 속에서 알바와 직원의 차이에 대한 것은, 매달 소화기 점검을 해야 하는 것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포함하며 점점 치졸해졌다. 치졸해진 후에야 이런 생각을 했다. 당신은 내가 알바인지 직원인지 알아야 하는가? 당신이 알바와 직원의 차이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소네치카는 그저 카페에서 일한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조울증이 뭐야?

 소네치카는 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안고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런 근황을 전하면 사람들은 조울증이 무어냐 물었고, 소네치카는 그저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다. “우울할 때는 너무 우울하고, 기쁠 때는 너무 기뻐요.” 사실 이건 조울증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아니다. 조증은 기쁨과 유사한 상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주로 말수가 많아지거나 모든 감정 표현이 격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어쨌든 빤한 설명에는 필히 지겨운 반응이 따라붙었다.“ 그건 모든 사람이 그렇잖아.” 소네치카는 감정의 파도를 겪는 여느 사람들과 자신의 조울증이 뭐가 다른지 말했다. “화가 나면 제 몸을 해쳐요.” 스스로의 몸을 해치면 아프겠다는 말은 퍽 위로가 되었지만, 소네치카는 자기감정을 제어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열등한지 생각해야 했다. 


정신병에 대한 모든 말

 소네치카는 최근에 정신과 의사를 새로 만나며 ‘분노형 우울증’으로 진단받았다. 분노가 격해져서 했던 행동들이 조증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고 의사가 말했다. 이제 소네치카는 더 이상 조울증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까지 먹고 있으니 반복해야 하는 생각들이 있다. 마음의 병인데 약을 왜 먹는지, 내가 약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약은 내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신병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이고 내가 의지박약의 구제 불능 인간인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당신들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병 아니야? 약을 꼭 먹어야 해? 약에 너무 의존하지 마. 약 그만 먹어. 약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 정신병이라는 게 진짜 있는 거야? 나는 사느라 바빠서 아플 시간이 없더라. 의지를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수면제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한 통을 먹어도 잠이 안 온다던데, 정신과 약 그만 먹어.” 너무 가볍게 뱉어진 이 말들은 하나의 편견으로 압축할 수 있다. 정신병은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편견은 바꿔 말하면 ‘정신병에 지는 것은 의지가 없어서’라는 것이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7년째 정신병을 앓고 있는 소네치카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네치카는 지칠 때마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정신병이 의지로 이겨내는 병이라면, 나는 나아질 수 없다.


“아빠는 너를 사랑해” (제 가족들 아세요?)

 소네치카는 가족들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음에도 가족들이 소네치카를 사랑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자식에게 회초리를 드는 부모의 마음은 자식의 설움보다 더 아프며,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존재이기 때문이다. “난 가끔 쟤를 콱 죽여버리고 싶어.”라고 말하는 소네치카의 애비는 사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고 자신의 삶이 버겁기 때문이다. 소네치카는 자신의 가족들이 밉다고 말할 때마다 “너의 할머니는, 너의 애비는 당연히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다. 가족들이 항상 미웠기 때문에, 틈만 나면 가족들이 밉다는 말을 했고, 그 사랑 어쩌고 역시 틈날 때마다 들어 귀에 박혔다. 어느 해 4월, 소네치카의 애비는 소네치카에게 접이식 의자를 휘둘렀고, 재떨이로 쓰던 머그컵을 던졌으며, 손바닥과 주먹을 날리며 5분 정도 폭력을 휘둘렀다. 그 5분은 소네치카가 경찰을 불러 신고하고, 임시 숙소에 며칠 머물며 전치 2주의 상해진단서를 떼고 첫달치 월세를 구걸해 고시원으로 이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같은 해 5월, 소네치카의 가족들은 삼촌을 앞세워 소네치카의 생일 선물로 절연을 통보했으며 할미와 애비는 소네치카의 번호를 차단했다. 그리고 소네치카는 천천히 가족들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며 ‘어쨌든 그들은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내 알 바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소네치카의 머릿속에 사랑이란 개념은 엉망진창이다.

 

소네치카는 “카페에서 일해요.”라고 말했다. 

 소네치카가 직원으로 카페에 입사하고 처음 발령받은 매장에서 가장 먼저 발견했던 것은, 아침마다 매장의 서비스 테이블을 비추는 였다. 그 무지개는 그냥 봐도 예뻤는데, 햇빛이 매장의 유리벽을 지나고 스테인리스에 반사되어 나타난 것이라 계절이 지나고 해가 기우는 것에 따라 위치가 바뀌었다. 언젠가 사람 머리께로 올라갔고, 두 사람이 그 무지개에 비춰지며 “너 지금 되게 예쁘다. 사진 찍어줄게.”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당신이 나를 알바생으로 규정하고 알바와 직원의 차이를 묻는 대신 카페 일은 어떠냐 물었더라면, 이 귀여운 무지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번은 아침부터 술에 취한 개저를 만났다. 그 개저는 3천원짜리 주스를 찾았고, 소네치카는 가장 저렴한 주스가 4천 원이라고 말했다. 그 개저는 자기가 이주민이라고 말했다. 소네치카는 이주민을 위한 복지제도 중에 이 카페가 협력해야 하는 것이 있는가 생각했다. 그래서 물었다. “제가 그걸 알아야 하나요?” 그 개저가 이주민이라는 주장은, 소네치카가 알 필요 없는 것이었다. 개저는 머쓱해 하며 카페를 떠났다. 소네치카는 속으로 물음표를 가득 안고서 밝게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당신, 언젠가 편견을 부끄러이 여기어 안녕히 가시지 말고 부디 먼저 메뉴를 보고 골라라. 소네치카는 “카페에서 일해요.”라고 말했다. ‘카페 알바 하시는구나.’라는 대답은, 메뉴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