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날것'

[웹진 '날것']28호 정직한 절망

믿는페미 2018. 9. 6. 16:46


웹진 날것’ 28

 

정직한 절망

-폴짝

 

마지막으로 여쭤볼게요. 혹시 ……. 화가 많으시거나 그러지는 않으시죠?”

 

최근 본 대학교 교육 조교 면접의 마지막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을 받고 몇 초간 고민한 후 대답했다.

 

그럼요. 화가 많거나 욱하거나 하지 않아요. 다시 좋은 인연으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면접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마음이 찜찜했다. 면접을 진행한 조교가 혹시 화가 많으시거나 그러지는 않으시죠?’ 앞에 ‘~처럼이라고 흘려 이야기해서 제대로 못 들은 부분이 페미니스트들처럼인 것 같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사실은 화가 많은데 먹고 살기 위해서 화가 없는 척할 수밖에 없어서 그랬을까. 찜찜한 이유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적게나마 생활비를 벌려면 나는 교육 조교 일자리가 필요했고, 그 순간만큼은 붙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찜찜하지만 한 번 더 누구처럼요?’라고 되물어 확인하지 않은 이유, 나라는 인간을 한 겹 더 포장한 이유는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왕이면 덜 스트레스 받으면서 먹고 살고 싶어서. 그리고 나는 교육 조교가 되었다.

 

샌드위치 공장, 대형마트, 카페, 학과 사무실, 빵집, 사회복지단체, 영어학원, 종합사회복지관, 어린이집.

 

 위에 나열된 곳들은 내가 지금까지 짧게는 이틀, 길게는 1년 정도 근무했던 곳들이다. 내가 근무했던 서비스 직종들은 나에게 여성스러운외모와 옷차림, 그리고 친절한 태도를 요구했다. 단기로 1주일간 근무했던 대형마트 시음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분들은 화장이 예의라는 것을 알려줬다. 나는 모 브랜드의 커피를 판매했는데 평가를 나온 회사 직원은 나의 미소와 서 있는 자세를 지적했다. 처음으로 단기가 아닌 장기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카페 구인 광고를 찾고 면접을 보러 갔을 때 화장을 꼭 하고 가라는 동생의 충고를 받아들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카페 매니저가 내 몸매와 얼굴을 훑어보며 외모가 괜찮다며 내 생김새를 칭찬했기 때문이다. 영어학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영어학원 카운터에서 전화를 받고, 아이들 출결을 관리하는 일을 했었다. 내 기준에서 학원의 업무는 서비스직이 아니었지만학원 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원장은 나의 옷차림과 태도에서 학원의 분위기가 결정된다고 했고,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깔끔하고, 여성스러운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보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그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서비스직은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는 업종이니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냐고, 소비자들은 나의 태도와 친절도 함께 구매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화장을 했고, 옷을 골라 입거나 사이즈가 한정적인 유니폼에 어울리는 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또 면접에서 처음 만난 이들이 묻는 개인적이고 무례한 질문들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모부의 직업이나 애인의 유무, 결혼 계획 같은 질문들 말이다. 나는 적당히 나를 꾸미고, 대답하는 대가로 생활비를 벌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취업한 복지관에서 나는 직업, 돈벌이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업무 중 사무실을 둘러보았을 때 사무실에 있는 누구처럼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삶이 가치나 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나가 그곳에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입사와 퇴사를 7개월이라는 간격을 두고 경험했다. 직장의 선배 한 분은 일은 그냥 일이라고만 생각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의미를 두지 말고.’라고 조언하셨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연습이 채 되기도 전에 일을 그만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흔히 말하는 직업으로 자아실현은 바라지 않았지만 적어도 돈을 벌기 위한 과정에서 고유한 내 모습이 훼손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돈벌이는 돈벌이에서만 그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일하지 않는 혹은 돈벌이와 상관없는 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하면서 많은 순간에 나의 경계가 침해당한다고 느꼈다. 물론, 개인이 생각하는 경계의 의미와 크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그저 많은 심리적 공간과 시간적 공백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내 애인의 말을 빌리자면 조직 속에서 운신의 폭이 좁은 사람이었달까. 퇴사를 한 1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나는 내가 왜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졸업과 동시에 모부의 지원이 끊겨서 학생 때보다 밥벌이가 더 간절했지만 이제 막 회사를 나온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고민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충분하면서도 생활을 유지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 그리고 노브라와 민낯의 얼굴로 근무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렇게 내가 찾은 직업은 어린이집 보조교사였다. 자격증이 있기에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고, 하루 4시간, 일주일에 20시간만 근무할 수 있는 조건이어서 시간 활용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리고 가난했다. 일하는 시간이, 업무에 대한 책임이 줄어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철저하게 소비를 통제했지만미래를 위해 저축할 수 있는 돈은 없었다. 돈이 없다는 것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시간과 미래를 향한 상상력까지 저당 잡는다는 의미임을 그전까지는 몰랐다.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했을 때, 믿는페미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을 때, 대학원에 가서 여성복지를 공부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이야기했다. 폴짝 너는 사회를 거슬러 살아가는구나그러면서 누군가는 부럽다고 했고, 누군가는 걱정된다고 했다. 내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몇 년째 가장 단순한 얼굴을 하고이지만 나는 그 시간 동안 줄곧 가장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자주 절망했다. 잘 지내느냐는 가벼운 인사에 쉽게 잘 지낸다고 대답할 수 없게 되었다. 화가 많냐는 질문에 온갖 생각을 하다가 가까스로 대답하게 되었다. 부러움에 부응하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란 듯이 뛰어넘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시간을 성실하게도 흘러서 날짜는 차곡차곡 쌓였지만 깨달음은 얻지 못했다. 그리고 그 가난한 시간 동안 나는 더 많은 와 만났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정직하게 절망하고 있다.

 

 

 

해가 드는 창 너머 미래로부터 빌려온 오늘이 줄어드네

있어 보이는 말들과 초라한 정신승리도 어딘지 낡아가네

아아아아 권태로운 희망보다 정직한 절망을

아아아아 기꺼이 무너지지 저 시작을 위해

누구의 편도 아닌 바람을 발로 차면서 어딘가 향하는데

적시기엔 미흡했고 어렸던 나의 노래는 당신께 닿지 못했네

아아아아 같은 선택을 했겠지 다시 그날이 와도

아아아아 어쩔 수 없는 그게 나였겠지

좀 더 독창적으로 망했더라면 소용모를 일에 몰두 했더라면

좀 자주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그 밤도 그러했더라면

아아아아 나의 지난한 노래가 이 밤을 섬기고

아아아아 어쩔 수 없이 계속 가야겠지

어떤 위대함에 복무했더라면 희열을 가지고 살아갔더라면

했더라면 했던 일들 알았다면 그 밤도 그러 했더라면

어떤 칭찬들을 배반했더라면 우리의 사랑에 헌신했더라면

너무 쉽게 용서하지 않았다면 그 밤도 그러 했더라면

 

정직한 절망. 싱잉앤츠 2<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겠지요>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