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날것'

[웹진 '날것']27호 도레미파솔라시도시라솔파미레도

믿는페미 2018. 8. 30. 22:56

[웹진 '날것'] 27호 

 도레미파솔라시도시라솔파미레도.

- 희년


“레솔시, 레솔시, 기억하자! 이건 G코드야” “쾅쾅쾅 쾅쾅쾅(하얀건반 치는 소리)” “Ab이랑 Eb코드 바로 이어질 때는 이렇게 쳐야지. 광광광 (검은건반 치는소리)” “왜 이렇게 손가락이 안 찢어지는 거야?” 


매일매일, 적으면 몇 분, 많으면 1시간 정도 피아노 연습을 한다. 나는 피아노 학원을 제대로 다닌 적이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전에 다닌 기억이 나는데, 그때 “나비야” “학교 종이 땡땡땡” 만 치고 그만뒀다. 아마 피아노 실력을 늘리기 위해 학원에 다닌 것이 아니라, 방과 후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엄마가 일하는 동안 맡길 곳이 피아노 학원밖에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다녔던 거 같다. 그리고 20살에 신학대에 들어갔고, 교회에서 사역했다. 교회에서는 성별에 따라 사역자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명확했다. 특히나 ‘여자’ 사역자는 ‘반드시’ 피아노 반주가 가능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늘 받았다. 그래서 나는 20살 초반에 교회 피아노 반주를 할 수 있게 하는 학원에 등록해서 교회 악보 위주로 코드연주 연습을 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한 달 만에 피아노 학원도 그만뒀다. 그렇게 나는 피아노 반주를 못하는 여성 사역자가 됐다. 


교회는 어떤 곳보다도 성역할 구분이 명확한 곳이다. 피아노 반주, 유아유치부 사역, 율동, 주방 봉사, 데코 장식 등은 여자들의 주요한 리그이다. 반면 기타 반주, 드럼, 스타렉스 운전, 찬양인도, 방송실, 차량 위원회, 중고등부 사역 등은 남자들의 무대인 경우가 많다. 위의 사항 중에서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역 자원은 ‘내적’인 에너지가 많다. 예를 들면 피아노 반주, 동영상 만들기, 피피티 하기, 방송실 음향 점검 등은 잘하지 못했지만, 분위기를 유쾌하게 하는 것, 사람을 편하게 하고 웃음을 주는 것, 우수한 학교성적으로 교회의 명성(?)을 높여주는 것, 행사 진행하는 것 등은 잘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내적 에너지는 여성 사역자가 가져야 할 덕목과 상충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요하게 사용되지는 않았다. 공부를 잘해도 칭찬만 들을 뿐, 나의 학구열을 자원 삼아 훌륭한 신학자로 키워줄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하물며 설교할 기회도 안 주는데 뭘 바라겠느냐마는! 중요한 교회 행사의 진행자로 서는 건 남자 사역자들이었다. (걔네들 보다 내가 훨씬 웃기고 잘하는데ㅜㅜ) 나는 그저 남자 사역자가 꾸린 진행 순서에 끼워 맞춰진 잠깐의 시간에 교인들의 웃음 소비에 필요한 도구로 사용될 때가 많았다. 이런 말은 참 유감스럽지만, 교회 사역은 신학적인 공부가 뒷받침되지 않아도 잘되는 경우가 많다. 담임 목사에게 딸랑딸랑 아첨하고 비위를 잘 맞추고, 은혜 받은 쉰 목소리로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며 성경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신실한 척하면 좋은 사역자로 인정받았다. 오히려 내가 만난 목사님들은 신학과 신앙은 별개라고 하면서 공부할 시간에 더 기도하고, 교회 나와서 찬양하고 사역에 매몰되라고 대놓고 말씀하신 분도 계신다. 오죽하면 내가 교회 사역과 하고 싶은 공부의 병행이 힘들어 작년에 전자를 그만두고 후자에 집중했을까! 만일 교회에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공부를 좋은 사역의 자원으로 생각했다면 위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좋아하는, 잘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에 집중했다. 여성의 전화에서 성폭력,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을 이수하고 심화과정을 통해서 전화상담사로 봉사했다. 그리고 교회 내 여성들의 젠더 수행성에 대해 버틀러의 이론을 가지고 심도 깊게 석사논문을 썼다. 운이 좋게 내가 쓴 석사논문이 전공분야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아 논문 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떨어졌다(ㅋㅋㅋㅋ). 믿는페미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팟캐스트를 PD가 되면서 교회 내 젠더폭력과 성차별로 힘들어하는 크리스천들을 만났다. 사실 이때 즈음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교회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일반 여성 단체에서 운동할 것인가?” 결국, 나는 교회를 선택했다.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교회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각오를 가지고 다시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여성 목사의 존재가 희미한 교회에서 목사가 되어 약자들의 스피커가 되겠다는 다짐하에. 1년 동안 교회를 떠나 여성단체에서 활동했던 것이 나에게는 나름 자부심이었고, 교회 사역에 필요한 자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사역하는 교회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했다가 면전에서 언어폭력을 경험했다. 나에 대한 검열이 조금씩 이루어졌다. 그래서 믿는페미 활동도 몰래 하게 됐다. 물론 교회 내에서 교육 목사님이 나의 활동을 지지하고 쉴드쳐 주지만, 사실 이마저도 목사님이 인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였다. 특히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내가 다니는 교단은 절대 반대 입장이기 때문에 퀴어와 연대한다고 입 뻥긋하면 안 된다. 혹여나 목사가 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를 지지하거나 연대하는 입장을 밝히기만 해도 떨어지게 되는 이 악랄한 현실에서 나는 늘 괴리감을 느낀다. 그리고 뼈저리게 다시 깨달았다. “내가 하는 활동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구나. 나는 이방인이구나. 내가 가진 자원은 교회에서 당장 쓸모가 없구나.”


현재 사역하고 있는 교회는 보수적이지만 그래도 목사님께서 여성 사역자 양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다. 목사님께서는 내가 가진 내적 자원과 에너지에 관심이 많고 이를 키우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 교회에서 목사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이하 수련목)을 밟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목사님도 아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교단법에 의하면 교회마다 최대 3명의 수련목을 뽑을 수 있는데, 우리 교회에서 수련목 과정을 지원할 사역자들이 나 포함 4명이었다. 즉, 4명이 모두 수련목 필기시험에 합격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불안함과 초조함이 엄습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계산하며 혼자 따지기 시작했다. 

“남자 A사역자는 이 교회에서 4년 동안 사역했고, 그 중 2년은 풀타임으로 있었기 때문에 교회 일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어. 그리고 스타렉스 운전도 할 줄 알잖아? 기타반주, 방송실, 드럼, 피피티, 영상 작업 등 웬만한 건 다하고 있어. 남자 B사역자도 마찬가지이고. 비록 이 사람은 올해 처음 들어왔지만 교육 목사님이 총애하고 부서 내에서도 인정받는 사역자야. 여자 C사역자는 사역한 지 2년이 됐고, 유일하게 여성사역자 중에서 피아노 반주가 가능해. 기타 반주도 잘하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어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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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솔시, 레솔시, 기억하자! 이건 G코드야” “쾅쾅쾅 쾅쾅쾅(하얀건반 치는 소리)” “Ab이랑 Eb코드 바로 이어질 때는 이렇게 쳐야지. 광광광 (검은건반 치는소리)” “왜 이렇게 손가락이 안 찢어지는거야?” 위의 내용이 내가 손가락을 찢어가며 피아노 반주에 몰두한 이유이다. 나는 악보를 잘 보지 못한다. 그런데 피나는 연습으로 결국 수요예배 반주자를 하게 됐다. 5달 만에 실력이 확 늘었다. 잘은 못 치지만 그래도 웬만한 악보는 연주한다. 사람들은 나의 노력과 끈기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정말 독하다. 정말 대단하다.” 그들은 칭찬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항상 나를 씁쓸하고 슬프게 한다. 교회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다시 성역할을 반복해야만 한다니...! 그리고 현재 1종 면허를 따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혹시나 수련목 과정에서 운전 못하는 게 취약점이 될까 봐. (물론 우리 교회는 1종 면허가 있어도 스타렉스 운전을 절대 여자에게 맡기지 않는다.) 수련목 과정에서 떨어질까 봐 불안하다. 그래서 목사가 되지 못할까 봐 두렵다. 누군가는 목사라는 타이틀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한국 교회에서 성폭력 근절을 외치기 위해서 ‘목사’라는 자리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목사가 다 같은 목사는 아닐 거다. 여자 목사는 목사로 취급해주지 않는 현실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전도사일 때보다 목사가 됐을 때 나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경청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기꺼이 나는 목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꽤 수치스럽고 불편한 경험을 동반한다. 페미니스트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면 안 되고, 남자 사역자 책꽂이에 적힌 ‘보이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없으며, 믿는페미 스티커는 다 감추어야 하고, 성폭력 기자회견을 갈 때 얼굴을 가리면서 저항해야 한다. 그래서 늘 괴롭다. 교회에 가기 싫을 때가 많다. 하지만 교회에 갈 수밖에 없다. 이 불편한 공존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합리화하면서 살아간다. 괴롭고 괴롭고 괴롭다. 슬프고 슬프고 슬프다. 그러나 나는 이내 플랫(b) 4개로 구성된 악보를 마스터하기 위해 오늘도 안방에 있는 전자 피아노 앞으로 간다. 광광광. 쾅쾅쾅. 도레미파솔라시도시라솔파미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