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날것'

[웹진 '날것']26호 이제 그만 아프고 싶다.

믿는페미 2018. 8. 23. 17:13


[웹진 '날것'] 26호 


이제 그만 아프고 싶다.

-오스칼네고양이



 직장에 다니니 ‘종합건강검진’을 받을 일이 종종 생긴다. 돈은 좀 들지만 평소에 무심했던 내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귀찮다 여기지 않고 열심히 검사를 받으려 한다. 그러다 보면 보통 2년에 한 번꼴로 검진을 받게 된다. 이전의 결과표와 비교해서 내 몸 상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혹은 변함이 없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불어 검사용 의료장비들의 진화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의료장비의 진화는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하여 이루어지겠지만, 검사를 받는 내 입장에서는 그것이 이전 것과 비교하여 얼마나 나를 ‘덜 아프게’, ‘덜 불쾌하게’ 하는지가 중요하다. 가장 최근에 건강검진 받은 게 작년 이맘때쯤이었는데, 그 전과 비교하여 확실히 더 편안하게 검사를 받았다. 과거에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내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평소에 취하지 않는 자세로 멈춰있어야 했다면, 최근에는 기계가 알아서 움직여서 가만히 누워있는 내 몸을 스캔한다. 내시경을 위해 하루 전날 미리 복용해야 하는 약도 진화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게 그 약을 먹어도 구토가 나지 않는다. 사소하지만 그런 걸 경험하다 보면 “세상 좋아졌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했던 나를 다시 긴장하게 만든 검사가 있었으니, ‘유방 X선’ 검사와 ‘산부인과’ 검사가 바로 그것이다. 

난생 처음 유방 촬영을 했을 때가 생각난다. 보통의 엑스레이 촬영을 생각하며 들어갔다가, 눈물을 쏙 빼고 나왔다. 들어가면 촬영기사가 나의 한쪽 유방을 기계와 기계 사이에 넣는다. 이어 그 기계가 내 유방을 두고 위아래서 압착하기 시작하는데, 그 강도가 매우 심해서 이러다 유방 내 모든 조직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참다못해 목 끝에서 욕설이 튀어나올 때쯤 겨우 촬영이 끝난다. ‘와, 정말 죽는 줄 알았네,’ 라며 생각하는 순간 다시 내 유방을 기계 사이에 넣는데, 이번에는 위아래가 아닌 양옆에서 압착하기 시작한다. 난 본래 고통을 잘 참아서 내시경도 비수면으로 곧잘 하고, 폐에 기흉이 생겨 관을 꽂았을 때도 그럭저럭 잘 버텼는데, 양옆에서 커다란 기계가 내 가슴을 압박해올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촬영이 끝나고 예상 못 한 고통에 당황에 흘러나온 눈물을 닦고 있는데, 촬영기사가 다른 쪽 유방을 기계 위에 올려놓으라고 주문했다. 유방은 양쪽으로 두 개가 있으니 이걸 한 번 더 반복해야 하는 것이었다. 

산부인과 검사는 어떤가. 친구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산부인과에 가기 싫은 이유가 그 ‘검사’ 때문이라고들 한다. 나 역시 그렇다. 검사용 의자에 올라가 앉아 다리를 벌리고 있으면 차가운 도구가 질 속으로 들어오는데 그 불쾌감이 상당하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혈을 하곤 해서 산부인과 진료를 자주 받는 편인데, 10년 넘도록 산부인과의 검사 방법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최근 받았던 건강검진에서도 그러했다. 다른 여타의 검사를 무리 없이 잘 받았지만, 유방 사진 촬영을 위해 검사실 밖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과거의 고통이 생각나서 소름이 끼쳤다. ‘이번엔 좀 덜 아프려나. 지난번 보다 낫겠지. 검사 장비도 좀 발전하지 않았겠어?’라고 생각하며 검사실에 들어갔지만, 그 고통은 여전하고 무자비했다. 자궁 검사를 위해 내 질 안으로 들어온 그 이름 모를 의료도구도 여전히 투박하고 차가워서 온 몸에 있는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짜증. 검사를 다 받고 나온 나에게 밀려온 감정이었다. ‘유방과 자궁 검사는 대체 왜 이렇게 소름 끼치고 고통스럽지? 다른 검사들은 다 편안하게 바뀌어 가고 진화하고 발전하는데, 이건 왜 바뀌지 않았지? 연구를 안 하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이 필수로 받아야 하는 검사이고, 질병의 치료가 아닌 검사 그 자체로 굉장히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도1) 내가 경험한 10년 넘는 시간 동안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유방과 자궁 검사가 만약 남성들이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검사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단언할 순 없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운 검사로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적어도 통증을 줄여주는 약이라도 개발했겠지. 혹은 수면 상태에서 검사받도록 했을 수도 있겠다. 모르긴 몰라도 “그 검사는 원래 그렇게 아픈거야.” 라는 말로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거다.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런 상상도 해본다. 만약 남성들이 생리를 했다면, “원래 생리할 땐 불쾌하고 아픈거야.” 라는 말이 그냥 남아있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든 안 아픈 방법을, 불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겠지. 그 방법을 찾고 나서는 ‘인류를 고통에서 해방시킬 놀라운 발견’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사람들은 그 진보에 박수를 쳤을 것이고 ‘과거에는 생리통 때문에 아프기도 했었대.’라며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하듯 웃으며 말했겠지. 그런 변화는 기대보다 더 빨리 이루어졌겠지. 물론 발암물질 가득한 생리대를 뻔뻔하게 팔아먹지도 않았을 테고.


 가끔 돌아보면 이 사회는 여성의 몸에 대해 ‘아픔과 고통에 더 강인한 몸’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마땅히 고통을 참아야 한다고, 여자로 사는 건 그런 거라고 은근슬쩍 강요한다. 그 어떤 질병 혹은 고통도 사회적 산물이 아닌 것이 없는데, 고통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놓고는 ‘견디라’ 한다. 

이십 대 초반에 만났던 남자친구가 내게 무심코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여자들은 맨날 아프다 그러더라.” 그때는 그 말에 화가 나면서도 아픈 곳이 많은 나 자신을 탓했었다. 그러나 돌아보니 내가 아픈 건 내 몸이 증언하는 사실이고, 그건 내가 스스로를 탓할 문제가 아니지 않나? 그리고 그의 말대로 소위 ‘여자들’이 더 자주 몸의 고통을 느낀다면 그건 이 사회가 마땅히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 


유방과 자궁 검사가 유독 ‘변함없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 사회가 여성의 몸이 마주하는 고통에 관심 없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그만 아프고 싶다. 



1) 2017년 보도된 한 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모(58·여·서울 은평구)씨는 유방암 검사를 매년 빠뜨리지 않고 받고 있다. 세 살 위 언니가 5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로다. 하지만 검사가 너무 고통스러워 피하고 싶다. 이 검사는 X선 촬영기기(맘모그램)에 유방을 넣고 압착한다. … 유방암 검진 비율을 더 높여야 할 상황인데 장애물이 있다. 유방 X선 검사를 받아 본 사람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검사를 기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2017).  [건강한 당신] 유방 X선 촬영은 아파서 초음파 검사만? 그러다 암 놓쳐요. https://news.joins.com/article/21866171 )